博川 최정순

천수만에서
              博川 최정순


운명이 된
쓰린 가슴 삭이며
안면도 영목항 떠나
효자도 지나는 뱃길
맥주 거품 하얀 길
꼬리 무는 선미파 뒤로
괭이갈매기 시김새하며 선회하고
수면은 고기비늘처럼 반짝인다

거센 물살 몸 가누면서
이마 맞대고 속살거리는 조각섬들
옹기종기 동양화처럼 떠 있는데
거센 바람 외씨버선발로 뛰어가며
한 음 한 음 키운 처절한 한恨 소리
이 섬 저 섬 휘돌다 허망하게 부서진다

아득한 옛날의 지순한 사랑
가뭇없이 묻혀 가는 슬픈 전설
파도길 타고 슬그머니 흘러들어
팔작지붕 처마 끝 올라앉은 바다제비
목 놓아 소리하는 부침새 꺾음새는
미학의 절제 없이 제멋대로 출렁인다.

 

간월암에서
                博川 최정순


넓게 팔 벌려 얼싸안은 모감주나무
섬 속 섬에서 달 보다 도 얻은 무학대사 도량처
물때 따라 열고 닫는 속세 이음길
갈매기 우웽우웽 소리치며 나그네 인도하니
소원 한 자락 소원 탑에 올리고
채움 비움 답 찾아 해탈문 올랐는데
몇백 년 풍상 견디며 살아온 사철나무
홀로 파란색 옷 입고 외로운 나그네 반기니
마음의 채움과 비움 바로 거기 있었네
경내 들어서 좁쌀만큼 비우고 좁쌀만큼 채우니
중생들 수복修福 기원하는 스님의 독경 소리
중생들 번뇌 씻어 줄 스님의 독경 소리
갈매기 날개 실어 멀리멀리 날아가고
간월암 황금빛 낙조 길게 누우면
나그네 하많은 응어리 풀어헤치고
얼굴 붉게 물들이며 활활 타고 있다.

4 months ago | [YT] | 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