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수험생활은 스스로 만들어낸 부담감에서 비롯된 고통의 연속이었습니다. 가족을 포함한 그 누구도 저에게 공부하라 소리를 한 적이 없었는데도 말이죠. 좋은 대학을 가는 길 말고는 행복으로 향할 수 있는 길이 없을 거라고, 좋은 대학을 가지 못하면 모두가 날 싫어하지 않을까 생각했던 저는 그 생각을 토대로 공부에 더 몰입할 수 있었기보다 불행의 늪에 빠질 수 밖에 없었습니다. 대학을 못 가면 부모님도, 선생님들도, 친구들도, 모두가 나를 안 좋게 보지 않을까? 마치 모두 나를 바라보고 있는 듯한 느낌.
그렇게 길고도 긴 시간을 온갖 허상에 빠진 채로 야금야금 죽어가던 도중 수능을 맞이하게 되었습니다. 0.1퍼센트도 되지 않는 운에 모든 걸 걸었던 현역 수능은 누가 보아도 예견된 결과였습니다. 11월 14일, 막연한 걱정만 하던 결과를 눈 앞에 마주하니 실날 같은 가능성만을 바라보며 견뎌왔던 모든 부정적 감정들이 한 순간에 터져버리고 말았습니다.
아무도 만날 수 없었습니다. 학교도 가지 못 하고 그 누구의 연락도 받지 않고 방 한 켠에 틀어박혀 지금이 낮인지 밤인지 알지도 못 한 채 눈물만 흘리다 지쳐 잠들고의 과정을 수없이 반복했습니다. 그 과정에서 진지하게 죽음에 관해 고민하다 결국 발걸음이 향한 곳은 정신과였습니다.
흔히 말하는 좋은 대학에 간다면 살아가면서 많은 이점이 있는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한 이유로 사회에서는 ‘‘대학이 중요하다’’ 라고 많이들 말을 하곤 합니다. 하지만 수험생들 대다수에게 ‘‘대학이 중요하다’’는 말은 자칫하면 ‘‘좋은 대학을 가지 않으면 안 된다’’로 들리곤 합니다. 더불어 온갖 매체에서 직간접적으로 학벌이 좋은 사람들을 치켜세우는 것을 보고 들으며 자라오게 되면서 이러한 학벌에 대한 강박은 더욱 강해져 왔습니다. 그 과정에서 자연스레 개인의 개성은 지워지고 학벌의 피라미드만을 바라보게끔 만들어지죠.
저도 꿈이라고 부를 만한 것이 있었습니다. 초등학교서부터 영상을 제작할 일이 있으면 모두 도맡아 해오고 방송부 활동도 하면서 PD의 꿈을 꾸었었죠. 유독 영상을 편집할 때면 새벽까지 작업을 해도 마냥 설레고 두근대더군요. PD가 아니더라도 영상을 전문적으로 제작하는 일을 하는 직업을 갖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대학도 신문방송학과나 예대의 영화과 같은 곳을 진학하고 싶었죠. 그러던 제가 그저 돈을 벌어야 한다는 이유만으로 꿈을 포기하고 이과로 전향해 관심도 없던 공대를 가려 했던 데에는 도대체 무엇이 그리 크게 작용했던 걸까요. 아마 그때부터 저는 제 자신을 잃어버리기 시작했던 것 같습니다.
여러분이 대입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스스로가 어떤 사람인지 계속해서 물으며 각자가 가지고 있는 고유한 개성을 잊지 않음과 동시에, 입시 과정을 떳떳히 밟은 후, 결과에 상관없이 뒤도 돌아보지 않고 떠나 나를 옭아매왔던 것들을 벗어던지고, 하루 빨리 더 넓은 세계를, 본인만의 세계를 경험하고 꾸려가며 주체적으로 살아나갔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꼭 남들이 밟는 길이 아니더라도 행복으로 향할 수 있는 길이 무수히 많다는 것을 꼭 알아갔으면 합니다.
결국 저는 수험생활 끝에 세간에서 말하는 ‘좋은 대학’에 합격했기에, 더욱 모순 섞인 결과론적인 말들이 되지 않게끔 최대한 재수를 하던 과정에서 겪었던 변화와 들었던 생각들을 토대로만 말씀을 드리려 노력했습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이 또한 누군가의 눈에는 그저 성공한 자의 교묘한 과거 미화, 기만으로 보일 수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살아 평생 대학만을 바라보며, 대학이 세상의 전부라는 생각을 가지며 살아올 수 밖에 없던 여러분들에게 대학에 대한 강박을 버리라는 말은 당연히 받아들이기 쉽지 않을 것입니다. 저 또한 고등학생 때 이런 말을 들었더라도 무책임한 소리라며 화가 나기도 했을 겁니다.
그럼에도 이렇게 학벌주의의 폐해와 과정의 의미를 역설하는 이유는, 제가 학생일 시절 모두가 대학이라는 결과만을 몰아붙일 때, 단순한 위로를 넘어서 이런 말을 해주는 어른이 절실히 필요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재수를 할 때 운이 좋게도 그런 어른이 나타나준 뒤로는, 제가 겪었던 것처럼 비슷한 고통을 겪고 있는 친구들에게 이런 말들을 역설해야 할 ‘의무’ 비슷한 것을 느끼기 때문입니다.
많이 힘들어하고, 많이 생각하고, 많이 돌아봅시다. 목표를 향해 달려가는 과정으로서도, 스스로를 알아가는 과정으로서도 후회없는 1년이 되길 응원하고 있겠습니다. 고맙습니다.
‘‘제로섬 상대평가의 몇 가지 퉁명스러운 기준을 따른다면, 일부만이 예외적으로 성공할 것입니다. 여러 변덕스러운 우연이, 지쳐버린 타인이, 그리고 누구보다 자신이 자신에게 모질게 굴 수 있으니 마음 단단히 먹기 바랍니다. 나는 커서 어떻게 살까, 오래된 질문을 오늘부터의 매일이 대답해 줍니다. 취업 준비, 결혼 준비, 육아 교육 승진 은퇴 노후 준비를 거쳐 어디 병원 그럴듯한 일인실에서 사망하기 위한 준비에 산만해지지 않기를 바랍니다. 무례와 혐오와 경쟁과 분열과 비교와 나태와 허무의 달콤함에 길들지 말길, 의미와 무의미의 온갖 폭력을 이겨내고 하루하루를 온전히 경험하길, 그 끝에서 오래 기다리고 있는 낯선 나를 아무 아쉬움 없이 맞이하길 바랍니다.’’
노베이스 의대생 페탈
저서 <수험생활지침서> 맺음말
제 수험생활은 스스로 만들어낸 부담감에서 비롯된 고통의 연속이었습니다. 가족을 포함한 그 누구도 저에게 공부하라 소리를 한 적이 없었는데도 말이죠. 좋은 대학을 가는 길 말고는 행복으로 향할 수 있는 길이 없을 거라고, 좋은 대학을 가지 못하면 모두가 날 싫어하지 않을까 생각했던 저는 그 생각을 토대로 공부에 더 몰입할 수 있었기보다 불행의 늪에 빠질 수 밖에 없었습니다. 대학을 못 가면 부모님도, 선생님들도, 친구들도, 모두가 나를 안 좋게 보지 않을까? 마치 모두 나를 바라보고 있는 듯한 느낌.
그렇게 길고도 긴 시간을 온갖 허상에 빠진 채로 야금야금 죽어가던 도중 수능을 맞이하게 되었습니다. 0.1퍼센트도 되지 않는 운에 모든 걸 걸었던 현역 수능은 누가 보아도 예견된 결과였습니다. 11월 14일, 막연한 걱정만 하던 결과를 눈 앞에 마주하니 실날 같은 가능성만을 바라보며 견뎌왔던 모든 부정적 감정들이 한 순간에 터져버리고 말았습니다.
아무도 만날 수 없었습니다. 학교도 가지 못 하고 그 누구의 연락도 받지 않고 방 한 켠에 틀어박혀 지금이 낮인지 밤인지 알지도 못 한 채 눈물만 흘리다 지쳐 잠들고의 과정을 수없이 반복했습니다. 그 과정에서 진지하게 죽음에 관해 고민하다 결국 발걸음이 향한 곳은 정신과였습니다.
흔히 말하는 좋은 대학에 간다면 살아가면서 많은 이점이 있는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한 이유로 사회에서는 ‘‘대학이 중요하다’’ 라고 많이들 말을 하곤 합니다. 하지만 수험생들 대다수에게 ‘‘대학이 중요하다’’는 말은 자칫하면 ‘‘좋은 대학을 가지 않으면 안 된다’’로 들리곤 합니다. 더불어 온갖 매체에서 직간접적으로 학벌이 좋은 사람들을 치켜세우는 것을 보고 들으며 자라오게 되면서 이러한 학벌에 대한 강박은 더욱 강해져 왔습니다. 그 과정에서 자연스레 개인의 개성은 지워지고 학벌의 피라미드만을 바라보게끔 만들어지죠.
저도 꿈이라고 부를 만한 것이 있었습니다. 초등학교서부터 영상을 제작할 일이 있으면 모두 도맡아 해오고 방송부 활동도 하면서 PD의 꿈을 꾸었었죠. 유독 영상을 편집할 때면 새벽까지 작업을 해도 마냥 설레고 두근대더군요. PD가 아니더라도 영상을 전문적으로 제작하는 일을 하는 직업을 갖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대학도 신문방송학과나 예대의 영화과 같은 곳을 진학하고 싶었죠. 그러던 제가 그저 돈을 벌어야 한다는 이유만으로 꿈을 포기하고 이과로 전향해 관심도 없던 공대를 가려 했던 데에는 도대체 무엇이 그리 크게 작용했던 걸까요. 아마 그때부터 저는 제 자신을 잃어버리기 시작했던 것 같습니다.
여러분이 대입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스스로가 어떤 사람인지 계속해서 물으며 각자가 가지고 있는 고유한 개성을 잊지 않음과 동시에, 입시 과정을 떳떳히 밟은 후, 결과에 상관없이 뒤도 돌아보지 않고 떠나 나를 옭아매왔던 것들을 벗어던지고, 하루 빨리 더 넓은 세계를, 본인만의 세계를 경험하고 꾸려가며 주체적으로 살아나갔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꼭 남들이 밟는 길이 아니더라도 행복으로 향할 수 있는 길이 무수히 많다는 것을 꼭 알아갔으면 합니다.
결국 저는 수험생활 끝에 세간에서 말하는 ‘좋은 대학’에 합격했기에, 더욱 모순 섞인 결과론적인 말들이 되지 않게끔 최대한 재수를 하던 과정에서 겪었던 변화와 들었던 생각들을 토대로만 말씀을 드리려 노력했습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이 또한 누군가의 눈에는 그저 성공한 자의 교묘한 과거 미화, 기만으로 보일 수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살아 평생 대학만을 바라보며, 대학이 세상의 전부라는 생각을 가지며 살아올 수 밖에 없던 여러분들에게 대학에 대한 강박을 버리라는 말은 당연히 받아들이기 쉽지 않을 것입니다. 저 또한 고등학생 때 이런 말을 들었더라도 무책임한 소리라며 화가 나기도 했을 겁니다.
그럼에도 이렇게 학벌주의의 폐해와 과정의 의미를 역설하는 이유는, 제가 학생일 시절 모두가 대학이라는 결과만을 몰아붙일 때, 단순한 위로를 넘어서 이런 말을 해주는 어른이 절실히 필요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재수를 할 때 운이 좋게도 그런 어른이 나타나준 뒤로는, 제가 겪었던 것처럼 비슷한 고통을 겪고 있는 친구들에게 이런 말들을 역설해야 할 ‘의무’ 비슷한 것을 느끼기 때문입니다.
많이 힘들어하고, 많이 생각하고, 많이 돌아봅시다. 목표를 향해 달려가는 과정으로서도, 스스로를 알아가는 과정으로서도 후회없는 1년이 되길 응원하고 있겠습니다. 고맙습니다.
‘‘제로섬 상대평가의 몇 가지 퉁명스러운 기준을 따른다면, 일부만이 예외적으로 성공할 것입니다. 여러 변덕스러운 우연이, 지쳐버린 타인이, 그리고 누구보다 자신이 자신에게 모질게 굴 수 있으니 마음 단단히 먹기 바랍니다. 나는 커서 어떻게 살까, 오래된 질문을 오늘부터의 매일이 대답해 줍니다. 취업 준비, 결혼 준비, 육아 교육 승진 은퇴 노후 준비를 거쳐 어디 병원 그럴듯한 일인실에서 사망하기 위한 준비에 산만해지지 않기를 바랍니다. 무례와 혐오와 경쟁과 분열과 비교와 나태와 허무의 달콤함에 길들지 말길, 의미와 무의미의 온갖 폭력을 이겨내고 하루하루를 온전히 경험하길, 그 끝에서 오래 기다리고 있는 낯선 나를 아무 아쉬움 없이 맞이하길 바랍니다.’’
- 허준이 교수 서울대학교 졸업식 축사 中 -
2 weeks ago | [YT] | 3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