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it KEDEM

노아흐 5786(2025) 토라포션 내용의 질문에 대한 답변입니다.
많은 분들이 궁금해 하시는 듯하여, 게시글에 해당 내용을 공유합니다.

Q.
1. 사탄이 자유의지가 없으며 인간의 티쿤을 위해 하나님이 쓰시는 피조물(영)이라고 하셨는데 그렇다면 사탄의 origin은 어떻게 설명될 수 있을까요?

2. ‘불못’에서 영원히 고통받는 게 아니라 소멸된다는 것이 무슨 의미인지요? (지금까지는 '구더기도 죽지 않고.' 등의 말씀으로 영원한 고통 심판으로 알고 있었는데요...)

A.
샬롬. 주신 질문들은 어려운 주제입니다. 아래 설명 드리겠지만, 이 또한 충분치 못할 수도 있습니다. 글의 한계이나, 여러 번 묵상하시다 보면 빛이 임할 줄로 믿습니다.

1. 사탄은 타락한 천사가 아니라, 애초부터 하나님의 심판의 측면이 드러난 게부라의 왜곡된 빛 또는 발현(Menifestation of God’s Judgmental will)입니다. 사탄은 존재론적 반역자가 아니라 우주적 균형을 이루기 위한 하나님의 도구(좌편, Left Side of God)이지요. 사탄은 본질적으로 게부라(심판의 빛)의 왜곡된 파생으로 생겨났습니다. 하나님은 이러한 존재를 의도적으로 창조/허락하셨고 이것을 시험과 분리의 도구로 사용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면서도 사탄은 하나님의 통제 밖으로 벗어난 적이 없습니다. 욥기 1장에서도 이것을 보여주는데, 사탄은 하나님 앞에 와서 하나님의 허락 아래 욥을 시험합니다. 그래서 사탄을 하나님 왼편의 힘(כח הדין)이라고 표현하며, 빛에서 떨어져 제한된 상태로 있는 심판의 발현이라고 합니다.

사탄은 쉐비라트 하켈림에서 설명했었지만, 그릇이 빛을 감당하지 못하고 깨질 때를 본질적 기원으로 봅니다. 게부라의 불균형으로 인해 קליפה(클리파)가 형성되었고, 에덴 동산의 선악과 사건을 통해 사람 위에 영향력을 가지게 된 것입니다. 사탄의 권세는 인간이 죄를 받아들임으로인해 인간 영역까지 확대된 것입니다.

클리파가 인간 의식에 들어왔다는 것은 다시 말해 ‘인간이 자신의 삶을 하나님의 뜻 중심이 아니라 자기 욕망 중심으로 판단하고 결정하기 시작했다는 것’입니다. 클리파는 어떤 힘이 아니라 하나님의 진리를 가리는 왜곡된 사고 구조입니다. 그 본질은 ‘나는 하나님 없이도 나의 기준으로 판단할 수 있다’라는 의식입니다. 이것이 에덴에서 뱀이 하와에게 넣어준 의식입니다.


2. 성경의 영원한 고통(불)과 영원한 소멸은 상충하지 않습니다. 이것은 시간의 무한한 고통이 아니라 ‘영원히 되돌릴 수 없는 상태’를 표현하는 히브리적 종말 언어입니다. 용어를 좀 구분을 하자면;

1) 게힌놈(גיהנם)
: 정화의 불이고 임시적입니다. 게힌놈은 정화를 목적으로 하고, 거룩함이 있는 부분은 구원되고 타락된 일시적 흔적은 사라지는 곳입니다. 혼합되어 있는 빛의 왜곡 흔적을 없애는 곳입니다. 그래서 우리 영혼안에 남은 부정한 잔재를 불꽃의 정화작용으로서 제거한다고 이해하면 됩니다. 이것은 죄 자체가 불에 타는 것이 아니라 죄로 인해 영혼에 생긴 왜곡 흔적이 분리되어서 사라지는 것을 의미합니다.

2) 불못, 아감 하에쉬(אגם האש)
: 이것은 나하르 디누르נהר דינור(심판의 불 강/불의 강)으로 표현할 수도 있으며, 천상에서 흘러나오는 심판의 불길을 말합니다. 불못은 최종 판결 및 폐기의 성격을 가집니다(되돌릴 수 없음). קליפה(클리파, 껍질/가림)를 최종적으로 무력화/소멸시키는 것에 해당합니다. 회복, 정화가 불가능한 어둠의 본질 자체가 소멸되는 것인데, 이것을 התבטלות히트바틀루트 라고 합니다. 이 말은 ‘자기 중심의 소멸’을 말하고 하나님의 뜻과 하나로 투명하지는 상태를 말합니다. 그리고 이것을 둘째 사망과 연결시켜 설명 드렸었는데요, 둘째 사망은 불못의 결과입니다. 생명과의 완전 단절이고, 존재의 끝이라는 의미입니다.

계 20:14 “사망과 음부도 불못에 던지우니 이것은 둘째 사망이라.” 이것이 분리/고통의 개념 자체이고 소멸을 가리키는 것입니다. 고통의 영원한 유지 장소가 아니라 모든 죽음 개념을 끝내는 종말적 소멸의 불을 의미합니다.

계21:4 “다시는 사망이 없고 애통이나 아픔이 다시 있지 아니하리니” 만약 사탄과 악인들이 끝없이 존재하며 고통받는 구조라면 더 이상 아픔이 없다는 선언은 모순이 됩니다. 따라서 불못은 고통 지속의 공간이 아니라 심판의 최종 소멸을 뜻합니다.

말4:1 “악인은 지푸라기 같을 것이라, 그 날에 그들을 불살라 그 뿌리와 가지도 남기지 아니하리라.” 불살라 없어진다는 소멸을 말합니다.

악은 실체가 아니라 빛의 부재입니다. 빛이 모두 하나님께로 돌아가게 되면 악은 스스로 무(에인)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불못을 빛의 마지막 회수 장소라고 일컬을 수 있습니다. 빛이 회수되면 그릇(클리파)는 존재 자체를 유지할 수 없으므로 소멸되는 것입니다.


3. 이사야 66:24 “그들이 나가서 내게 패역한 자들의 시체들을 볼 것이라 그 벌레는 죽지 아니하고 그 불은 꺼지지 아니하여 모든 혈육에게 가증함이 되리라.”

벌레תּוֹלַעַת는 문자적으로 구더기이지만, 히브리어에서는 시체를 분해하는 자연적 과정(소멸)이라는 상징 표현입니다. 죽지않는다/꺼지지 않는다는 것은 시간적 끝없음(헬라 철학적 개념)이 아니라 ‘심판이 완전히 이루어져 중단되지 않는다’는 심판의 철저함을 상징합니다.

미드라쉬 라바에서는 ‘불이 꺼지지 않는다는 것은 불이 실제로 영원히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의로운 자들 앞에서 심판의 기억이 완전히 사라지지 않음을 말한다’라고 표현합니다. 즉 ‘꺼지지 않는 불’은 하나님의 공의가 완전히 이루어짐을 의미하고, ‘죽지 않는 벌레’는 악의 잔재가 완전히 부패되어 더 이상 생명으로 돌아오지 못함을 상징합니다. 벌레는 קליפה가 빛을 잃고 스스로 소멸되어 가는 과정입니다.

구더기도 죽지 않는다는 표현은 또한 히브리적 과정법으로 상징됩니다. 심판이 중단되지 않고 완전히 수행됨을 강조하기 위함입니다. 왜냐하면 히브리적 사고에서 죽지 않는다는 표현은 ‘그 과정이 끝까지 시행된다’, ‘결코 무시되거나 취소되지 않는다’는 의미입니다. 다시 말해, 심판이 생명력을 완전히 제거할 때까지 멈추지 않는다는 완전한 종결을 확정짓는 의미로 해석해야 합니다. קליפה의 최종적 해체입니다. 심판의 확실성과 진지함을 극대화하여 하나님의 심판에 대해 무거움을 가지기 위함입니다.

왜 하나님은 단순히 소멸된다, 끝난다라고 말하지 않고, 밤낮 괴로움, 불못, 구더기도 죽지 않는다는 강한 언어를 사용하셨을까요? 이것은 히브리적 정신과 하나님의 계시 방식의 본질적 특징입니다.

인간의 영혼은 성경의 ‘정보’로는 움직이지 않고 ‘깨달음, 깊은 인식’에 의해서만 변화됩니다. 하나님은 단순 정보를 우리에게 주시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영혼 전체를 각성시키기 위해 때로는 충격적, 극적 언어를 사용하십니다. 우리가 자녀를 키울때를 생각해보면 잘 이해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래서 결국 우리가 두려움, 경각심을 가지고 살아갈 수 있게 하심이고, 회개의 문을 열게 하심입니다. 하나님의 정의는 부드러운 선언이 아니라 우주의 근본을 뒤흔드는 절대적 진리여야 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결국 우리가 생명을 선택하도록 흔들어 깨우시고 하나님과 온전한 하나됨을 이루게 하시기 위해 이렇게 우리를 인도하시는 것입니다.

- 도움이 되시길 바랍니다 -

1 week ago (edited) | [YT] | 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