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위로

끝이라고 믿었던 밤

그는 그날 밤, 삶의 마지막 페이지를 덮었다고 믿었다.
방 안은 조용했고, 시계 초침 소리만이 그가 아직 살아 있음을 증명하듯 규칙적으로 울렸다.
“여기까지인가 보다.”
그의 생각은 늘 같은 문장으로 돌아왔다. 실패, 관계의 단절, 반복되는 좌절. 무엇 하나 제대로 붙잡은 것이 없다는 결론이 그를 눌렀다.

그때, 문득 오래전 들었던 한 문장이 떠올랐다.
“사람은 의미를 잃을 때 무너진다. 그러나 의미는 언제든 다시 만들 수 있다.”

그는 그 말을 했던 노교수를 떠올렸다. 아들러를 이야기하던 사람.
“용기는 문제를 없애는 힘이 아니라, 문제와 함께 살아가기로 선택하는 힘입니다.”

그는 그 말을 이해하지 못했었다. 지금도 완전히 이해한 것은 아니었다. 다만, 그 문장이 지금 이 밤에 자신을 붙잡고 있다는 사실만은 분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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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문 하나가 삶을 바꾸다

그는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져보기로 했다.
“나는 왜 이렇게 쓸모없는 존재가 되었을까?”
그러다 곧 질문을 바꿨다.
“만약 내가 아직 쓸모를 증명하지 않았을 뿐이라면?”

아들러는 말한다.
사람을 무너뜨리는 것은 열등감이 아니라, 열등감에 대한 해석이라고.

그는 자신의 실패를 ‘나는 안 되는 사람’이라는 증거로 삼아왔다.
하지만 다른 해석도 가능하지 않을까.
‘아직 배움의 과정에 있는 사람’이라는 해석 말이다.

그는 처음으로 실패를 삶의 낙인이 아니라, 방향을 바꾸라는 신호로 바라보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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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립이 아닌, 연결을 향하여

그가 가장 두려워했던 것은 외로움이었다.
아들러는 인간을 “공동체적 존재”라고 불렀다.
사람은 혼자서는 견딜 수 없고, 누군가에게 기여하고 있다고 느낄 때 살아갈 힘을 얻는다고.

그는 거창한 기여를 떠올렸다가 고개를 저었다.
그럴 필요는 없었다.
오늘, 이 밤을 견디는 것.
내일 아침, 누군가에게 안부 문자 하나를 보내는 것.
그것도 충분한 기여일 수 있다.

“나는 아직 누군가의 하루에 작은 점 하나쯤은 찍을 수 있는 사람이다.”

그 생각이 그의 숨을 조금 더 깊게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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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택은 언제나 지금 가능하다

아들러는 과거보다 목적을 중요하게 여겼다.
“사람은 과거 때문에 그렇게 되는 것이 아니라, 앞으로 무엇을 하려는지에 따라 지금을 산다.”

그는 과거를 탓하는 데 지쳐 있었다.
그래서 목적을 아주 작게 정했다.

오늘은 죽지 않기.
오늘은 이 밤을 넘기기.

그것이면 충분했다.
큰 결심이 아니라, 작은 선택.
아들러가 말한 용기는 바로 그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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격려는 결과가 아니라 존재를 향한다

그는 마지막으로 이런 문장을 마음에 적었다.

“잘해서 괜찮은 게 아니라,
지금 살아 있으니 괜찮다.”

아들러의 격려는 칭찬이 아니다.
성과를 요구하지 않는다.
있는 그대로의 존재를 인정하는 선언이다.

그는 아직 완전히 괜찮아지지 않았다.
하지만 한 가지는 분명했다.
이 밤이 끝이 아니라는 것.
끝이라고 생각했던 지점이, 다시 방향을 잡는 출발점일 수 있다는 것.

시계 초침은 여전히 움직이고 있었다.
그는 그 소리를 들으며 천천히 눈을 감았다.

내일, 다시 선택할 수 있다.
그것으로 충분하다.

1 week ago | [YT] | 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