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여택 TV

‘홀치기’란 밑그림이 그려진 직물의 무늬를 따라 실을 여러 차례 감아 염색약이 침투하지 못하도록 한 후, 직물을 염색약에 담갔다가 실을 풀어내면 아름다운 무늬가 만들어지는 전통적인 염색법을 말한다.

1970년대 일본에서는 홀치기 염색법이 널리 쓰였고, 수가공으로 밑그림이 그려진 직물에 한 올씩 실을 감아야 하는 홀치기 물량은 인건비가 싼 한국의 부녀자들에게 넘어왔다.

홀치기를 의뢰하는 직물이 대량으로 한국에 넘어오면 다단계 방식으로 배분되어 전국 방방곡곡의 농촌 부녀자들에게 전달되었다.

그 과정에 단계마다 ‘구전(소개비)’을 떼는 총대(수집상)들이 많아서 정작 밤새워 홀치기에 매달리는 부녀자들에게 돌아가는 돈은 얼마 되지 않았다. 홀치기로 면직물 ‘한 마’를 완성하려면 며칠 걸렸는데 완성품으로 몇 백 원 정도 지급되었다. ‘마’는 직물을 세는 단위로서 ‘야드’와 같아서 90Cm에 해당한다.

그 시절 농촌에는 ‘도리짓고땡’으로 하루 저녁에 소 한 마리 값을 날리는 사내와, 단돈 몇 백 원을 벌어보려고 호롱불 아래 밤새 홀치기 틀에 앉아 실꾸리를 달그락 거리며 홀치기 하는 아낙이 함께 살았다. 남존여비, 부부유별, 장유유서의 질서가 그대로 남아있던 시대였다. 다행히 아버지는 노름이나 화투를 하지 않았고 그런 사람들과 어울리지도 않았다.

엄마는 겨울 내내 동네 몇몇 부인들과 모여 앉아 밤새 홀치기를 했다. 어머니 또래 동네 아지매들이 홀치기틀을 들고 우리집 작은방에 찾아왔다. 전기가 없던 시절이니 기나긴 겨울밤 호롱불 밑에서 밤늦게까지 두런두런 얘기를 하며 왼손으로는 천을 밑그림을 따라 홀치기 틀의 바늘을 꿰고 오른손으로는 재빨리 실꾸리로 실을 감아 홀쳐매기를 수백 수천번씩 했다.

그럴때면 나는 석유 타는 냄새가 솔솔 피어오르는 호롱불 옆에 밥상을 펴놓고 숙제를 하다가 달그락거리는 홀치기 소리에 스르륵 잠들곤 했다.

엄마는 솜씨가 좋아서 수집상들에게 인기가 있었다.

아래는 그 시절 농가에서 홀치기를 하는 부녀자들의 사진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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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days ago (edited) | [YT] | 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