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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20년 만에 찾은 내 마음의 고향


비가 그친 후 숲으로 향하는 발걸음은 언제나 가벼웠다. 젖은 아스팔트 위로 스며드는 물기와 함께, 마음 한편에 맺힌 응어리도 천천히 풀어지는 것 같았다.

숲길에 접어들자 코끝을 스치는 향기가 온몸을 감쌌다. 빗물에 씻긴 풀잎들이 뿜어내는 청량한 생명력, 그리고 젖은 흙이 토해내는 깊고 묵직한 대지의 숨결. 이 향기들은 단순한 냄새가 아니었다. 그것은 위로였고, 치유였으며, 새로운 시작의 약속이었다.

20년 전, 인생의 큰 변화를 맞이했을 때도 나는 이런 숲길을 걸었다. 그때의 나는 상처받은 마음을 추스르려 애썼고, 혼자가 된다는 것의 의미를 되새기며 발걸음을 옮겼다. 지금도 그때와 같은 길을 걷지만, 이제는 고독이 두렵지 않다. 오히려 이 고요한 시간이 내게는 가장 소중한 선물이 되었다.

비 온 뒤의 숲은 모든 것을 새롭게 태어나게 한다. 먼지는 씻겨 내리고, 공기는 맑아지며, 생명들은 더욱 생생하게 숨 쉰다. 나 역시 이 숲길을 걸으며 조금씩 새로워진다. 어제의 피로와 근심은 젖은 낙엽 아래 묻어두고, 오늘의 평온함만을 가슴에 담는다.

반려견 코코와 함께 걷던 지난 가을이 떠오른다. 그 작은 발걸음이 만들어내던 소리, 그리고 그가 킁킁거리며 맡던 이 똑같은 향기들. 자연 앞에서 우리는 모두 같은 존재가 된다. 크고 작음, 사람과 동물의 구별 없이 모두가 이 향기로운 세상의 일부가 되는 것이다.

상쾌한 풀냄새와 흙냄새가 알려주는 것은 단순하지만 깊은 진리였다. 비가 와야 꽃이 피고, 고요해야 향기를 맡을 수 있으며, 혼자여야 진정한 평화를 느낄 수 있다는 것. 이제 나는 안다. 가장 아름다운 순간들은 이렇게 조용히, 혼자서, 자연의 품 안에서 만나게 된다는 것을.


- 단희쌤 -

3 months ago (edited) | [YT] | 1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