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온의 대로 말씀과 기도의 집

테슈바 40일 경외 <31>
존 비비어
네 발이 행할 길을 평탄하게 하며 네 모든 길을 든든히 하라. (잠언 4장 26절)
(27) 온전히 순종하기

이번 장을 시작하면서 한 가지 질문을 던지고 싶다. 어떤 프로젝트든 끝까지 완수하지 않고서 그 잠재력을 온전히 이루는 것이 가능할까? 답은 당연히 “아니다”이다. 우리 주님은 거대한 프로젝트를 이미 진행 중이시다. 그 프로젝트의 중심에는 한 나라를 건설하는 일이 있다. 그분은 우리 각자에게 하위 프로젝트들에 대한 책임을 맡기셨다. 우리가 이 프로젝트들을 끝까지 완수하면 하나님의 영광스러운 나라의 일이 완성될 것이다.

이 진리를 기억하면서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것에 대한 마지막 측면으로 넘어가 보자. 처음 네 가지와 함께 새로운 측면을 나열하면 다음과 같다.

1. 하나님께 즉시 순종한다.
2. 말이 되지 않아도 하나님께 순종한다.
3. 개인적인 유익이 보이지 않아도 하나님께 순종한다.
4. 고통스럽더라도 하나님께 순종한다.
5. 하나님께 온전히 순종한다.

이스라엘의 초대 왕 사울은 하나님의 말씀에 떨지 않는 사람을 보여 주는 전형적인 예다. 그는 이해되지 않거나 유익이 분명히 보이지 않거나 자신의 목적과 부합하지 않을 때면 쉽게 순종을 포기했다. 그는 거룩한 두려움이 없는 탓에 툭하면 다른 사람들에게 고통이나 해를 가했다.

하지만 원래부터 그랬던 것은 아니었다. 사울은 왕의 자리에 오르기 전만 해도 겸손하고 하나님을 두려워하던 청년이었다. 이 두가지 덕목은 언제나 짝을 이룬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왜 저를 주목하십니까? 저는 이스라엘서 가장 작은 지파 출신입니다. 게다가 제 가문은 제 지파에서 가장 보잘 것 없고요.”(삼상 9:21)

나중에 이스라엘의 첫 왕을 보기 위해 온 백성이 모였다. 그리고 긴 과정을 거친 끝에 사울이 뽑혔다. 하지만 리더들이 그를 아무리 찾아도 찾을 수 없었다. 알고 보니 그는 눈에 띄지 않는 곳에 숨어 있었다. 그는 남들에게 인정받고 싶은 마음이 조금도 없었다. (삼상 10:20~24)

하지만 거룩한 두려움이 그에게는 보배가 아니었다. 솔로몬과 마찬가지로 그는 성공, 명성, 리더 위치가 주는 혜택들을 경험한 뒤에 결국 그 두려움을 버렸다. 사울 왕을 비롯해서 대부분의 경우, 거룩한 두려움을 잃는 과정은 처음에는 미묘하게 진행된다. 처음에는 작은 일에서 신념을 따르지 않는 일로 시작된다. 그런 일이 반복될수록 양심은 점점 더 무뎌져만 간다. 결국, 더 중요한 문제 앞에서 자신도 모르게 불순종을 하기에 이른다.

사울왕이 그랬다. 거룩한 두려움을 잃었다는 증거가 표면 위로 드러나기 시작했다. (삼상 13:5~14) 하지만 그 와중에도 그는 큰 성공을 경험하고 있었기에 그것을 깨닫기가 힘들었다.(삼상14:47)

얼마 뒤 사울왕은 이런 명령을 받았다. “지금 가서 아말렉을 쳐서 그들의 모든 소유를 남기지 말고 진멸하되 남녀와 소아와 젖 먹는 아이와 우양과 낙타와 나귀를 죽이라. ”(삼상15:3) 하나님은 이 나라의 악한 행위에 벌을 내리실 참이었다.

사울은 21만 명의 군대를 동원했다. 그 군대는 모든 인간과 가축을 도륙했다. 단, 아말렉 왕 아각과 가장 좋은 가축들만 빼고, (삼상15:7~9) 한번 찬찬히 생각해보자. 사울이 이만한 규모의 군대를 동원했을 정도면 아말렉에는 최소한 25만명의 시민이 있었을 것이다. 사울의 군대는 말하자면 그들 중 249,999명을 죽였다. 사울은 맡은 임무의 99.99퍼센트를 완수했다. 하지만 ‘거의’완벽한 순종에 대한 하나님의 반응이 어땠는지 보라.

내가 사울을 왕으로 세운 것을 후회하노니 그가 돌이켜서 나를 따르지 아니하며 내 명령을 행하지 아니하였음이니라.(내 명령에 순종하기를 거절했음이니라.) 사무엘상 15장 11절

사무엘은 이 메시지를 사울에게 전하면서 그의 행위를 “거역”으로 규정했다. (삼상15:23) 사울은 의심의 여지없이 ‘죄’를 지었다. 잠시 죄에 관해서 논해보자. 사도 요한은 죄가 “불법”이라고 말한다. (요일3:4) 죄에 대한 그의 정의는 하나님의 권위에 대한 반항이다. 이 죄를 이런 관점에서 보라. 예를 들어, 에덴 동산에서 아담은 창녀와 한 침대에 눕거나 은행 강도질을 하거나 살인하지 않았다. 단순히 그는 하나님이 하신 말씀에 불순종했다. 마찬가지로 사울은 하나님이 시키신 일에 ‘온전히’ 순종하지 않았다.

더 깊이 들어가 보자. 사울은 전쟁에 나서라는 명령을 받고서 짜증을 내며 “저는 할 수 없습니다!” 라고 말하지 않았다. 그런 식으로 말했다면 대부분이 거역이라고 말할 것이다. 사울은 하나님의 명령을 무시하고 자기 일만 챙기지도 않았다. 그랬다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는 순종을 우선시하지 않는 죄를 지었다.”라고 말할 것이다. 하지만 사울의 행위에 대해서는 대부분이 거역으로 보지는 않을 것이다.

사울의 임무의 99.99퍼센트를 완수했기 때문에 대부분이 잘했다고 말할 것이다. 그 행동을 거역이라고 말할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사울의 입장이 되어서 그런 지적을 받으면 누구나 “너무하는군! 왜 작은 실수만 따지는 거야? 내가 이룬 많은 성과를 인정해 줄 수는 없어?” 라고 따질 것이다. 하지만 분명히 말하건대 ‘거의 완벽한’ 순종은 전혀 순종이 아니다.

왜 이렇게 강한 표현을 사용했는지를 생각해 보자. 첫째 당시에 왕이 다른 나라를 정복하고서 적국의 왕을 산 채로 잡아 오는 것은 왕궁에 살아 있는 트로피를 진열하는 것과도 같았다. 이는 스스로도 기분이 우쭐해지고 왕궁에 들어오는 사람들에게 자신의 위대함을 늘 각인시킬 수 있는 방법이었다.

둘째, 왜 가장 좋은 가축들을 남겼을까? 이에 대한 답을 말하기 전에 이 상황이 왜 복잡한지를 생각 보자. 사울은 하나님께 바치기 위해 가장 좋은 가축들을 죽이지 않고 살렸다. 그가 사무엘 선지자에게 어떻게 항변했는지를 들어 보라. “그것은 무리가 아말렉 사람에게서 끌어온 것인데 백성이 당신의 하나님 여호와께 제사하려 하여 양들과 소들 중에서 가장 좋은 것을 남김이요 그 외의 것은 우리가 진멸하였나이다.” (삼상 15:15)

그는 왜 이렇게 말했을까? 백성들의 지지를 받기 위해서가 아니었을까? 이 나라는 하나님을 섬기는 나라였다. 병사, 제사장, 백성들은 십중팔구 서로에게 이렇게 말했을 것이다. “정말 경건한 왕이야. 항상 하나님을 가장 먼저 챙긴다니까 이번에도 하나님께 가장 좋은 것들을 드린다잖아.” 백성들은 하나님의 명령이 모든 것을 완전히 파괴하는 것이라는 사실을 몰랐다. 사울은 자신의 평판을 높이려고 노력하고 있었다. 그의 행동 이면에 자리한 동기는 사람에 대한 두려움이었다. 그는 자신감이 없는 사람이었다.

요즘 시대는 자신감이 없는 사람들을 불쌍하게 여기는 편이다. 하지만 불안감 이면에는 불순종의 대가를 치르더라도 인정과 사랑을 받으려는 욕구가 있다. 그들은 창조주께서 자신을 무조건적으로 받아 주시고 얼마나 깊이 사랑하시는지를 깨닫지 못하고 있다. 내 불안감의 정체를 정확히 알아야 한다. 그것은 위험한 함정이다.

사울은 거룩한 두려움이 없는 탓에 명령을 완수하지 않았다. 예수님의 본보기로 돌아가 보자. 예수님은 거부, 수치, 미움, 심한 반대, 매질, 끔찍한 십자가 처형을 당하셨다. 성전 경비들이 그분을 체포하러 왔을 때 제자들은 그들을 막으며 그분은 보호하려고 했다. 하지만 그분의 반응은 다음과 같았다.

너는 내가 내 아버지께 구하여 지금 열두 군단 더 되는 천사를 보내시게 할 수 없는 줄로 아느냐 내가 만일 그렇게 하면 이런 일이 있으리라 한 성경이 어떻게 이루어지겠느냐 (마태복음 26장 53~54절)

예수님께는 온전히 순종하는 것이 가장 중요했다. 고등학교 시절 우리 학교 라커룸에 흥미로운 포스터 한 장이 걸려 있었다. 나는 매일 오후 농구 연습이 끝날 때마다 그 포스터를 보았다. 포스터에는 고개를 푹 숙인 채 “그만두겠어” 라고 말하는 한 운동선수가 그려져 있었다. 그리고 그 그림 아래에는 십자가에 달려서 “나는 그만두지 않았다” 라고 말씀하시는 예수님의 그림이 있었다.

당시 나는 신자가 아니었음에도 그 이미지는 내 안에 깊이 각인 되었다. 예수님이 극심한 고초와 잔혹한 죽음을 피할 수도 있었지만 마침내 “다 이루었다” 라고 말씀하실 때까지 계속해서 순종하셨다는 사실을 알기에 그 이미지가 내게 훨씬 큰 의미로 다가온다. 예수님은 우리를 위해 온전한 순종의 본, 하나님이 무엇을 맡기시든 끝까지 완수하는 본을 보이셨다.

이제 더 큰 믿음을 달라고 부르짖는 제자들에게 예수님이 주신 명령을 더 잘 이해하게 되었으리라 믿는다.

이와 같이 너희도 명령 받은 것을 다 행한 후에 이르기를 우리는 무익한 종이라 우리가 하여야 할 일을 한 것 뿐이라 할지니라 (누가복음 17장 10절)

이제 “다” 라는 말씀의 의미가 전혀 새로운 의미로 다가오리라 믿는다. 언제나 온전히 순종하자.

핵심 말씀 : 절대로 멈추지 마십시오! 오직 예수만 바라보십시오. 그분은 우리가 참여한 이 경주를 시작하고 완주하신 분이십니다. 그분이 어떻게 하셨는지 배우십시오. 그분은 앞에 있는 것, 곧 하나님 안에서 그리고 하나님과 함께 결승점을 지나는 기쁨에서 눈을 떼지 않으셨기에 달려가는 길에서 무엇을 만나든 ..참으실 수 있었습니다. 여러분의 믿음이 시들해지거든 그분 이야기를 하나 하나 되새기고 그분이 참아내신 적대 행위의 긴 목록을 살펴 보십시오. 그러면 여러분의 영혼에 새로운 힘이 힘차게 솟구칠 것입니다. (히12:2~3)

2 weeks ago | [YT] | 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