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한우교수TV- 빅로컬빅펄스

■ 한국언론정보학회 동양커뮤니케이션 연구분과
이윤복박사(충남대) 발표에 대한 박한우교수(영남대) 토론문
오늘 발표 잘 들었습니다. 이 논문이 제기한 질문—왜 조선 초기 대간 언론 연구가 성종·중종 시기에 비해 비정상적으로 적은가—는 단순한 연구 공백의 문제를 넘어, 언론이 어느 시기에 어떻게 평가되는가를 다시 묻게 만든다는 점에서 의미가 큽니다. 더 중요한 부분은, 이 글이 그 이유를 “시대 분위기”나 “권력 억압”이라는 외적 조건이 아니라, 권근이라는 구체 행위자의 실천과 제도 개혁을 중심으로 재구성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1. 권근은 “언로 행위자”가 아니라 “언론 구조 설계자”였다
논문이 보여주는 권근의 상소 활동을 시간순으로 따라가면,
“간언한 사람”이 아니라 “간언이 지속될 수 있는 구조를 설계한 사람”이라는 정체성이 분명하게 드러납니다.
시기 핵심 활동 의미
고려 말 직언 상소 실천적 언관의 출발
정종대 사병 혁파 건의 견제가 반왕이 아니라 국가 안정 구조
태종 초 조대림 사건에서 대간 구명 간언자 처벌 → 언로 단절의 위험 인식
태종 8년 12월 직임사목 상소 소수 의견 간언을 제도화하여 언로의 생존 조건 설계
즉, 권근이 고민한 것은 “말하는 용기”가 아니라
“앞으로 계속 말할 수 있는 구조”였습니다.
2. 언론과 권력 분석에서 “구조”가 핵심이라는 현대 관점과의 연결
언론·공론장의 충격적 쇠퇴 현상 뒤에는 “비판 보도의 부족” 같은 현상적 요인이 아니라
언론이 지속될 수 있는 구조가 붕괴되고 있다는 사실이 본질적으로 존재한다.
요약하면 세 가지입니다.
① 언론은 본질적으로 비판이 아니라 구조의 문제다
– 비판을 잘하느냐 못하느냐보다, 발언의 틀이 지속 가능한지 여부가 더 결정적이다.
② 공론장은 저절로 존재하지 않고 설계되어야 유지된다
– 뉴스룸·데이터·지역의제가 연결되지 않으면 공론장은 중앙집권적 권력에 흡수된다.
③ 권력-언론 관계는 항상 기울어져 있다
– 따라서 언론이 지속되려면 제도·환경·기술·유통 구조를 스스로 바꾸어야 한다.
이 관점을 권근의 사례에 그대로 적용할 수 있습니다.
권근은 “간언을 성공시키려 한 것”이 아니라
“간언이 소멸하지 않는 조건을 제도 속에 심으려 한 것”이었다.
그래서 직임사목 상소가 중요한 것입니다.
이 상소는 간언 내용을 고치려는 시도가 아니라, 간언의 생존 조건을 설계한 시도였기 때문입니다.
이 점이 오늘날의 공론장 논의와 기막히게 접속합니다.
3. 허니문 저널리즘 / 팡파르 저널리즘 비유와 연구사적 인식 비판
현대 언론을 보면,
정권 초기 우호적 서사에 치우치는 허니문 저널리즘,
정권이 안정되면 성과 서사에 치우치는 팡파르 저널리즘(박한우 교수의 신조어)이 반복됩니다.
흥미로운 것은 조선 초기 언론 연구가 저조했던 이유가
단순히 사료 부족이나 연구자의 무관심 때문이 아니라,
바로 이와 같은 서사적 프레임이 연구사에 투영되어 있었기 때문일 수 있습니다.
• “초기 국정 안정기에는 언론이 약했을 것” → 허니문 프레임
• “전성기에는 치적 서사가 중심이 되어야 한다” → 팡파르 프레임
결과적으로 언로는 실제보다 약했다고 평가되고,
언로의 구조적 성취는 치적 중심 서사에 가려졌다.
이 논문은 그 프레임을 걷어냅니다.
그 점에서 이미 “사료 연구”가 아니라 “프레임 해체”의 연구입니다.
4. 권근의 언로 개혁과 현대 언론의 네트워크 구조론이 만나는 지점
항목 권근의 언로 구조 언론의 네트워크 구조론
관심사 간언이 끊기지 않는가 공론장이 끊기지 않는가
전략 소수 의견 간언 보장 → 제도 구조 개혁 다원적 미디어·지역 의제 활성화 → 구조 혁신
위기 인식 간언자 처벌 → 앞으로 아무도 말 못함 지역·전문 의제 소멸 → 공론장 축소
본질 메시지 언로는 보호받아야 존재한다 언론은 구조를 설계해야 지속된다
과거와 현재, 정치제도와 디지털 미디어는 조건이 다르지만
두 시기의 문제의식은 놀랍도록 정확하게 닿아 있습니다.
핵심은 “언론이 무엇을 말하느냐”가 아니라
“언론이 말할 수 있는 구조가 보장되는가” 이다.
권근은 그 구조를 조선 시대의 제도 안에서 설계했고,
토론자 박한우 교수는 그 구조를 오늘의 미디어 환경 안에서 다시 설계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맺음
따라서 이 논문은
• 조선 초 언로의 실존을 복원했고,
• 언로가 위험 속에서 보전되었다는 사실을 밝혔으며,
• 언로의 지속 가능성을 설계한 주체로 권근을 다시 세웠고,
• 연구사에 스며 있던 허니문·팡파르 서사 프레임을 교정했으며,
• 현대 공론장·언론 구조 논의와 연결할 수 있는 해석의 문을 열었다.
라는 점에서 단순한 시대 연구를 넘어섭니다.
한마디로 요약하면,
이 논문은 “초기 언론이 약했다”는 오랜 통념을 깨고
권근이 조선의 언론 구조를 설계한 출발점이었다는 사실을 드러낸 연구입니다.
좋은 발표 정말 잘 들었습니다.

1 week ago | [YT] |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