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동남권을 길게 가로지르는 작은 하천, 성내천. 오래전에는 농경지의 물길이었고, 지금은 보행자와 자전거, 반려견과 유모차가 함께 흐르는 일상의 감각 축이 되었습니다.
성내천의 ‘앞면’은 물길을 사이에 두고 좌우로 나란히 뻗은 보행로와 자전거길입니다. 고도로 기획된 이 공간 위로는 벚나무 가로수가 계절의 지붕처럼 드리워지고, 반듯한 길과 매끄러운 동선은 복잡한 마음을 정리하기에도 좋습니다. 하지만 성내천의 진짜 흥미로운 면은 ‘뒷면’에 있습니다. 아산병원 쪽 경사면을 따라 펼쳐진 소박한 오솔길. 치밀한 계획보다는 수수히 다듬어진 이 공간은, 오히려 더 풍성한 감정과 따뜻한 인상을 전해줍니다. 소래풀은 뜻하지 않게 군락을 이루고, 박태기나무는 웃자란 채 나름의 리듬을 뽐내며, 수많은 풀들이 저마다의 방식으로 자리를 잡고 숨을 쉽니다. 무계획은 아니지만 분명 기획을 벗어났고, 어쩌면 기획의 힘을 훌쩍 넘어선 공간. 그 안에서는 자연의 시간과 도시의 시간이 미묘하게 포개집니다.
성내천은 그렇게, 입체적으로 읽을 때 진짜 재미가 납니다. 공간도, 시간도. 물길의 앞면도, 뒷면도.
그리고 여기에, 성내천의 자랑이자 계절의 안내자, 벚나무가 있습니다. 이 나무들은 4월 초, 자기소개가 끝날 무렵 자신의 꽃을 떨굽니다. 많은 분들이 그 순간을 ‘벚꽃엔딩’이라 부르지만, 사실은 시작입니다. 버건디 와인색으로 물든 꽃받침을 남긴 채, 열매를 맺고, 여름을 지나면 빠르게 붉은 단풍을 준비합니다. 겨울엔 누구보다 먼저 잎을 떨구죠. 낙엽을 통해 가을을 알리고, 앙상한 가지로 겨울의 경계를 가장 먼저 알려주는 나무.
그래서 벚나무는 계절의 선봉장이라 불릴 만합니다. 이름을 바꿀 수 있다면 ‘가나무, 강나무’가 어울릴지도 모르겠습니다. 언제나 계절의 1번 타자니까요.
그리고 저는, 살짝 고쳐 ‘벗나무’라고 부르고 싶습니다. 계절을 가장 먼저 알려주는, 고맙고 상냥한 친구 같아서요.
공원읽기
성내천의 앞면과 뒷면, 그리고 벚나무의 재발견
서울 동남권을 길게 가로지르는 작은 하천, 성내천. 오래전에는 농경지의 물길이었고, 지금은 보행자와 자전거, 반려견과 유모차가 함께 흐르는 일상의 감각 축이 되었습니다.
성내천의 ‘앞면’은 물길을 사이에 두고 좌우로 나란히 뻗은 보행로와 자전거길입니다. 고도로 기획된 이 공간 위로는 벚나무 가로수가 계절의 지붕처럼 드리워지고, 반듯한 길과 매끄러운 동선은 복잡한 마음을 정리하기에도 좋습니다. 하지만 성내천의 진짜 흥미로운 면은 ‘뒷면’에 있습니다. 아산병원 쪽 경사면을 따라 펼쳐진 소박한 오솔길. 치밀한 계획보다는 수수히 다듬어진 이 공간은, 오히려 더 풍성한 감정과 따뜻한 인상을 전해줍니다. 소래풀은 뜻하지 않게 군락을 이루고, 박태기나무는 웃자란 채 나름의 리듬을 뽐내며, 수많은 풀들이 저마다의 방식으로 자리를 잡고 숨을 쉽니다. 무계획은 아니지만 분명 기획을 벗어났고, 어쩌면 기획의 힘을 훌쩍 넘어선 공간. 그 안에서는 자연의 시간과 도시의 시간이 미묘하게 포개집니다.
성내천은 그렇게, 입체적으로 읽을 때 진짜 재미가 납니다.
공간도, 시간도. 물길의 앞면도, 뒷면도.
그리고 여기에, 성내천의 자랑이자 계절의 안내자, 벚나무가 있습니다. 이 나무들은 4월 초, 자기소개가 끝날 무렵 자신의 꽃을 떨굽니다.
많은 분들이 그 순간을 ‘벚꽃엔딩’이라 부르지만, 사실은 시작입니다. 버건디 와인색으로 물든 꽃받침을 남긴 채, 열매를 맺고, 여름을 지나면 빠르게 붉은 단풍을 준비합니다. 겨울엔 누구보다 먼저 잎을 떨구죠. 낙엽을 통해 가을을 알리고, 앙상한 가지로 겨울의 경계를 가장 먼저 알려주는 나무.
그래서 벚나무는 계절의 선봉장이라 불릴 만합니다. 이름을 바꿀 수 있다면 ‘가나무, 강나무’가 어울릴지도 모르겠습니다. 언제나 계절의 1번 타자니까요.
그리고 저는, 살짝 고쳐 ‘벗나무’라고 부르고 싶습니다.
계절을 가장 먼저 알려주는, 고맙고 상냥한 친구 같아서요.
-이봐, 봄이야.
-헤이, 여름 왔어.
-저기, 가을이야.
-휴우, 겨울이야…
벚나무는 그렇게 수많은 커팅과 엔딩, 스타팅과 부스팅을 반복합니다.
성내천은 그 모든 리듬의 무대입니다.
- 글. 권정삼
5 months ago | [YT] |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