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종종 이런 의문을 품게 됩니다. "왜 세상에는 이렇게 많은 갈등이 있을까?" 그 뿌리는 각자가 자신만의 '옳고 그름'의 기준을 가지게 된 것에서 시작됩니다. 원래 선과 악을 구분하는 기준은 하나님만의 고유한 권한이었는데, 인간이 선악과를 먹으면서 상황이 달라졌죠.
재미있는 점은, 이것이 단순한 불순종의 문제가 아니라 '하나님처럼 되고 싶은 마음'에서 비롯되었다는 겁니다. 마치 법정에서 판사 한 명만이 최종 판결을 내릴 수 있는 것처럼, 선악을 구분하는 절대적인 기준은 하나님 한 분에게만 있어야 했습니다.
절대 기준인 하나님을 불순종하고 떠나 타락한 우리는 절대 기준이 없기에 각자 다 다른 기준을 가지고 살아갑니다. 가장 가까운 예로 부부 관계를 들 수 있습니다. 같은 상황을 두고도 남편은 "이건 문제야"라고 생각하는데 아내는 "전혀 문제될 게 없는데?"라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죠. 각자가 자신만의 기준으로 옳고 그름을 판단하다 보니 생기는 일입니다. 더 심각한 경우에는 완전히 가치관이 뒤집어질 수도 있습니다. 나쁜 것을 좋다고 하고, 좋은 것을 나쁘다고 하는 식으로요. 마치 흑백이 완전히 뒤바뀌는 것처럼요.
그러나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나아오는 사람들에게는 이제. 절대적인 기준을 알려주셨는데, 그것은 바로 '사랑'입니다. 예를 들어, 예수님은 제자들이 배고파서 안식일에 밀 이삭을 따먹었을 때, 그들의 행동을 이해하셨습니다. 형식적인 규칙보다는 사랑의 마음이 더 중요하다고 보셨기 때문이죠.
결국 이 모든 이야기가 우리에게 전하는 메시지는 명확합니다. 이제 우리에 기준을 내려놓고, 우리가 선악과를 따먹기 이전에 우리로 돌아가 생명나무이신 예수님을 날마다 택하며 우리의 기준이 되어주신 예수그리스도의 십자가 사랑을 통해 모든 선악을 결정하고 사사기의 표현처럼 "각자 자기 생각대로" 판단하는 것이 아니라.
떡한조각
우리는 종종 이런 의문을 품게 됩니다. "왜 세상에는 이렇게 많은 갈등이 있을까?"
그 뿌리는 각자가 자신만의 '옳고 그름'의 기준을 가지게 된 것에서 시작됩니다.
원래 선과 악을 구분하는 기준은 하나님만의 고유한 권한이었는데, 인간이 선악과를 먹으면서 상황이 달라졌죠.
재미있는 점은, 이것이 단순한 불순종의 문제가 아니라 '하나님처럼 되고 싶은 마음'에서 비롯되었다는 겁니다.
마치 법정에서 판사 한 명만이 최종 판결을 내릴 수 있는 것처럼, 선악을 구분하는 절대적인 기준은 하나님 한 분에게만 있어야 했습니다.
절대 기준인 하나님을 불순종하고 떠나 타락한 우리는 절대 기준이 없기에 각자 다 다른 기준을 가지고 살아갑니다.
가장 가까운 예로 부부 관계를 들 수 있습니다. 같은 상황을 두고도 남편은 "이건 문제야"라고 생각하는데 아내는 "전혀 문제될 게 없는데?"라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죠. 각자가 자신만의 기준으로 옳고 그름을 판단하다 보니 생기는 일입니다.
더 심각한 경우에는 완전히 가치관이 뒤집어질 수도 있습니다. 나쁜 것을 좋다고 하고, 좋은 것을 나쁘다고 하는 식으로요. 마치 흑백이 완전히 뒤바뀌는 것처럼요.
그러나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나아오는 사람들에게는 이제. 절대적인 기준을 알려주셨는데, 그것은 바로 '사랑'입니다.
예를 들어, 예수님은 제자들이 배고파서 안식일에 밀 이삭을 따먹었을 때, 그들의 행동을 이해하셨습니다. 형식적인 규칙보다는 사랑의 마음이 더 중요하다고 보셨기 때문이죠.
결국 이 모든 이야기가 우리에게 전하는 메시지는 명확합니다.
이제 우리에 기준을 내려놓고, 우리가 선악과를 따먹기 이전에 우리로 돌아가 생명나무이신 예수님을 날마다 택하며
우리의 기준이 되어주신 예수그리스도의 십자가 사랑을 통해 모든 선악을 결정하고
사사기의 표현처럼 "각자 자기 생각대로" 판단하는 것이 아니라.
날마다 우리안에 계신 성령님을 의지해 사랑의 영이신 성령님을 따라 살아야 겠습니다.
7 months ago | [YT] | 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