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쉴드]빛과 소금

원래 좀 쉬다가 다시 일어나서 마저 할일을 하는데 어제는 그냥 잤나보다;; 일어나보니까 이 시간이다…
그냥 살아가야하는 건 아는데 한번씩 사는 건 뭘까라는 생각이 들게 된다.
어제는 통장님 일도 잘 끝나서 담당하시는 공무원분이 내 이름과 생년월일만 확인하고 통장님께 연락해주신다고 하셨다.
압지가 대뜸 연락이 와서 외할아버지 재봉틀 이야기를 꺼냈는데 가서 수리를 맡기겠다는 내용이었다. 파고다 미싱! 외할아버지 친구분들께서 결혼축하선물로 사주신 재봉틀인데 외할아버지께서 가장 좋아했던 선물이었다고 한다. 그 재봉틀은 하실 줄은 모르지만 엄마가 물려받으셨고 나는 알지만 집을 나올 때 들고 나오지 못했다. 굉장히 무겁고 챙겨야할 것들이 많았으며 앨범을 다 챙기느라 알고도 들고 나오지 못했었다. 진즉에 재봉틀을 확인했을거면서 7년이 지난 지금에서야 말하는 이유가 뭔지…
그래도 이건 소각되지않아 하나 남았다.
나는 엄마와 같은 고등학교를 나왔다. 엄마는 엄마이자 선배님이시다. 이 학교에 들어가려고 고3처럼 공부했었다. 외할아버지는 맏손녀도 엄마와 같은 학교에 들어가는 것을 평소에 표현이 적은 분이 좋아하셨고 입학식에 참석하고 싶다고 하셨었다. 그러나 돌아온 압지의 답변은 안된다였고 외할아버지의 상심이 크셨으며, 나는 울면서 입학식을 마쳤다. 이로부터 약 5개월 후에 외할아버지는 큰병을 얻고 하늘의 별이 되셨다. 3개월을 넘기지 못한다는 말은 너무나도 정확했고 하늘은 무심하게도 외할아버지께서 가족들을 눈에 담을 기회까지 앗아가버렸다. 온가족들이 슬퍼하는 시간을 틈타 압지는 병문안은 가지않고 주식만 했다. 나는 학생의 본분을 지키기위해 공부를 계속했는데 외할아버지가 돌아가시기 전까지 압지에게 맞았다. 아주 약하게 적었으니 이거 하나는 적어놓아야겠다. 외할아버지는 병상에서도 외할머니와 미혼에 무능한 외삼촌의 거취를 걱정하셨다.
외할아버지의 우려는 현실이 되었고 결국 외할머니는 당신께서 지으신 집에서 돌아가시지 못했다. 그럼 어른들이 무엇을 했는지는 내가 괴로워서 생략하고싶다. 이렇게 맏사위로서 본분은 커녕 사람의 행동은 하지않은 압지는 나는 장인어른을 아버지처럼 생각했다라는 말을 나에게 해줬는데 친아버지도 아프면 버렸으면서 무슨 이미지가 되고 싶은지 모르겠다.
이래놓고 외할아버지 재봉틀을 고치니마니 하면서 또 괴롭히기 시작했는데 이제는 선을 넘나들고 있으시다. 나는 아무렇지않다면 거짓말이겠지만 과거가 들어있는 서랍을 계속 열어봐서는 현재를 살아갈 수가 없다. 마음에 유리조각 하나 박힌 것 같다. 근데 이걸 빼면 나도 죽을 것 같고 그냥 박힌 채로 살아가려고 한다. 마음에도 반창고를 하나 붙일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아프면 더 괴롭히는 압지덕에 언제 아픈지 모르게 하는데는 도가 텄다. 세상 사람들 다 알아도 압지만 모르면 된다! 압지에게 쳐맞고 밥도 안먹고 잠도 못자니까 압지가 밤에 병원에 억지로 데려가서 링거를 맞췄는데 안그래도 주사바늘 싫어하는데 억지로 맞게해서 엄마가 혀를 내두를 정도로 병원에 안간다. 일부러 안가는게 아니라 병원에 가거나 약을 타 먹으면 울적해져서 안좋아한다. 엄마도 아니까 더 강요안하시는거고. 압지는 그 어떤 일이 있었어도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살기를 원해서 나는 항상 웃고 다녔다. 근데 한번씩 아픈 건 어쩔수가 없다. 이조차도 압지에게 사과드렸었다. 더 욕하고 화내고 때려도 그거 다 받아줄 수 있었어야했는데 체력이 약해서 더는 같이 살 수가 없어서 미안하다고 했었다. 뭐라고 더 말해야할까. 나는 어렸을 때부터 외할아버지가 담배를 피려고 나가시면 담배를 끄실 때까지 불렀었고 혼자 뿌듯해했었다. 근데 다커서 알았다. 담배피는 시간은 방해하면 안된다는 것을 말이다.
재봉틀을 지키기는 힘들 것 같다. 그래도 화장대와 소가구 하나는 지켰으니 그걸로 만족한다. 혹시나 이 글을 보게 되는 분이 있다면 있는대로 약하게 적었는데 도무지 입증할 방법이 없어서 적어놓는 것이니 너그러운 마음으로 양해해주시기를 바라며 글을 마친다.
나는 지켜야할 사람들이 있기 때문에 이러한 일들이 있었다고 해서 좌절할 생각은 추호도 없다!

2 days ago | [YT] |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