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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범죄선거와 김대중, 김영삼 >

80년 5.18 김대중 폭동의 최대 피해자는 신민당 총재 김영삼이다. 5월 17일, 4년 중임 대통령 직선제 개헌안이 국무회의에서 의결 되었다면 4년 중임, 8년 대통령으로 이름을 남길 수 있었다. 그러나, 김대중은 복학생들을 주축으로 소요를 일으켰고 개헌은 좌절되었고, 전두환이 운좋게 무선거 7년 대통령이 될 수 있었다. 김대중 덕분에 대통령의 자리에 오를 수 있었던 전두환은 김대중에게 사면과 함께 불법 정치자금 수천억을 주게 된다.

87년 개헌 때도 김대중은 김영삼이 8년 대통령을 할까봐 5년 단임을 고집했다. 이런 김영삼, 김대중의 약점을 파고든 전두환은 나라보다 사적 의리, 우정을 더 앞세워 친구 노태우를 부정선거로 대통령에 당선시킨다. 구로구청 우편투표함의 노태우 표는 전국 평균보다 40% 2천표가 더 많았다. 우편투표함 250개 선거구를 모두 더하면 50만표다.

구로구청 우편투표함 부정사건으로 200명 이상 잘못없는 시민들이 체포되어 고초를 겪게 된다. 그러나, 87년 대선 부정선거 시비는 노태우의 공약인 올림픽 후 중간평가 퇴진 기대로 소멸된다. 그러나, 중간평가는 없었다.

구로구 우편투표함 부정선거는 그렇게 잊혀지고, 30년만인 2016년 개함되지만, 노태우 가짜 2천표 투입 의혹만 재확인하고, 수사도 없이 종결한다. 87년 대선 이후 김영삼과 김대중, 모든 정치인들은 이때부터 부정선거도 정치, 샅바싸움, 권력 다툼으로 인식한것 같다. 그래서, 김영삼은 3당 합당,으로 선관위의 조작으로 쉽게 대통령이 되었고, 그 다음이 김대중, 노무현, 이명박, 박근혜, 문재인, 윤석렬로 숨가쁘게 부정선거가 이어져 온 것이다.

부정선거는 국민들에게는 불의지만 정치인 그들에게는 정치였다. 범죄선거를 획책하는 선관위와 위원장인 판사들이 아무런 죄책감이 없는 이유다.

2 months ago | [YT] | 3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