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분은 ‘타이타닉’ 호의 이야기를 기억하십니까? 1912년, 대영제국은 인류 역사상 가장 크고 튼튼한 배를 만들었다고 자랑했습니다. 길이 269m, 폭 28m, 최대 탑승 인원 3500명. 당시로서는 상상할 수 없는 기술력의 결정체였습니다. 사람들은 그것을 “결코 침몰할 수 없는 배”라고 불렀고, 심지어 “하나님이라도 이 배를 침몰시킬 수 없다”고 호언장담했습니다.
그러나 그 배는 첫 항해에서 빙산과 충돌해 산산조각이 났고, 1500명 이상의 생명이 차가운 바다 속으로 사라졌습니다. “결코 침몰하지 않는다”던 인간의 자만이 한순간에 무너져 내린 것입니다.
오늘 우리의 세상도 다르지 않습니다. 과학, 의학, 인공지능, 우주 탐사… 인간은 더 높이, 더 빨리, 더 크게를 외치지만 그 끝은 언제나 허무와 무너짐입니다. 오늘 본문의 바벨탑 사건은 바로 그 인간의 교만, 하나님 없는 연합의 비극을 보여주는 거울입니다.
2. 본문 배경: 기술은 발전했지만 마음은 비어 있었다
홍수 이후 인류는 다시 번성하기 시작했고, 한 언어를 사용했습니다. 서로 소통할 수 있는 것은 하나님의 축복이었죠. 사람들은 벽돌을 굽고 역청을 사용하는 새로운 건축 기술을 개발했습니다. 문제는 그들의 마음에 하나님이 없었다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는 바벨탑 사건을 통해 우리 마음속 숨겨진 바벨탑은 무엇인지, 그리고 우리가 정말 쌓아야 할 것은 무엇인지 함께 살펴보겠습니다.
3. 첫째, 교만을 멀리해야 합니다
바벨탑을 쌓은 목적은 분명했습니다.
“우리 이름을 내고 온 지면에 흩어짐을 면하자.” (창11:4)
그들은 하나님의 이름이 아니라 자기 이름을 드러내려 했습니다. ‘하늘에 닿게 하자’는 것은 단순히 높은 건물을 짓겠다는 말이 아니라 하나님께 도전하는 마음이었습니다.
이 교만의 뿌리는 에덴동산까지 거슬러 올라갑니다. 사탄은 아담과 하와에게 “네가 하나님처럼 될 수 있다”고 속삭였습니다(창3:4–5). 인간은 하나님 없이도 스스로 완전해질 수 있다는 거짓말에 속아 넘어갔습니다.
유대 철학자 필로에 따르면, 사람들은 벽돌 하나하나에 자기 이름을 새겼다고 합니다. 그러나 탑이 무너지자 그 이름들도 함께 사라졌습니다. 인간의 명예욕이 얼마나 허망한지 보여주는 장면입니다.
팀 켈러 목사님은 말했습니다.
“인간의 가장 큰 죄는 하나님을 대신할 우상을 내면에 세우는 것이다.”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성공, 돈, 명예라는 우상에 **‘나의 이름’**을 새기고 있지는 않습니까?
사도 바울을 보십시오. 바리새인 중의 바리새인이었던 그는 예수님을 만난 후, 자신의 혈통과 학식과 명예를 배설물로 여겼습니다. 오히려 자신의 약함을 자랑했습니다. 그 약함 속에서 그리스도의 능력이 드러났기 때문입니다(고전15:10).
4. 둘째, 흩어짐을 두려워하지 말고 생명력으로 살아야 합니다
그들이 탑을 쌓은 두 번째 이유는 “흩어짐을 면하자”는 것이었습니다. 그들의 마음에는 불안이 있었습니다. 죄인은 항상 불안합니다. 그래서 스스로 안전을 확보하려고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이미 무지개 언약을 통해 다시는 물로 심판하지 않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하나님의 뜻은 흩어짐이었습니다.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창1:28, 9:1)
하나님은 우리를 공동체 속으로, 세상 속으로 파송하십니다. 우리는 숨어 있는 수도자가 아니라 세상으로 보내진 소금과 빛입니다(마5:13–14). 소금은 소금통 안에서만 머물면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세상 속으로 흩어져 들어가 부패를 막고 맛을 내야 합니다.
교회 울타리 안에서만 안전하게 머물려는 신앙은 바벨탑과 같습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생명력 있게 세상 속으로 들어가 가정에서, 일터에서, 학교에서 하나님의 형상을 드러내며 살아가기를 원하십니다.
5. 셋째, 하나님의 뜻에 순종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그들의 언어를 혼잡하게 하셨고, 결국 그들을 온 지면으로 흩으셨습니다(창11:6–8). 바벨이라는 이름은 ‘혼란’이라는 뜻입니다. 인간이 하나님 없이 무엇인가를 이루려 하면, 그 끝은 반드시 혼란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계획을 무너뜨려서라도 순종의 자리로 이끄십니다. 요나가 다시스로 도망쳤을 때 하나님은 폭풍과 큰 물고기로 그의 계획을 깨뜨리고 니느웨로 돌려보내셨습니다. 우리의 계획이 무너지는 순간이 하나님의 뜻이 시작되는 순간일 수 있습니다.
6. 결론: 바벨의 혼란에서 오순절의 연합으로
바벨탑 사건은 인간의 교만과 분열의 역사였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이 역사를 그냥 두지 않으셨습니다. 오순절 날, 성령이 임하시자 각기 다른 언어를 쓰던 사람들이 동일한 복음을 듣고 하나 되어 하나님을 찬양했습니다(행2:4).
진정한 연합은 성령이 임하고, 예수 그리스도가 주가 되실 때 가능합니다. 에베소서 4:3에서 바울은 말합니다.
“평안의 매는 줄로 성령이 하나 되게 하신 것을 힘써 지키라.”
교회가 하나 되기 위해 필요한 것은 프로그램이 아니라 성령 충만입니다. 성령이 충만할 때 우리는 서로의 다름을 사랑으로 품을 수 있습니다.
오늘 우리 마음속에도 보이지 않는 바벨탑이 있을 수 있습니다. 나의 이름을 높이고자 하는 욕망, 내가 만든 안전망, 내가 세운 계획들…. 그 탑을 무너뜨리고, 그 자리에 하나님의 이름, 하나님의 나라를 세워야 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오늘 우리의 숨겨진 바벨탑을 하나님 앞에 내려놓고, 성령 충만함으로 하나님 나라를 세워 가는 은혜의 사람, 겸손의 사람 되기를 축복합니다.
은혜누림교회
제목: 나의 숨겨진 바벨탑
본문: 창세기 11장 1–9절
1. 들어가는 말: 무너지지 않을 것 같은 것들의 몰락
여러분은 ‘타이타닉’ 호의 이야기를 기억하십니까?
1912년, 대영제국은 인류 역사상 가장 크고 튼튼한 배를 만들었다고 자랑했습니다. 길이 269m, 폭 28m, 최대 탑승 인원 3500명. 당시로서는 상상할 수 없는 기술력의 결정체였습니다. 사람들은 그것을 “결코 침몰할 수 없는 배”라고 불렀고, 심지어 “하나님이라도 이 배를 침몰시킬 수 없다”고 호언장담했습니다.
그러나 그 배는 첫 항해에서 빙산과 충돌해 산산조각이 났고, 1500명 이상의 생명이 차가운 바다 속으로 사라졌습니다. “결코 침몰하지 않는다”던 인간의 자만이 한순간에 무너져 내린 것입니다.
오늘 우리의 세상도 다르지 않습니다. 과학, 의학, 인공지능, 우주 탐사… 인간은 더 높이, 더 빨리, 더 크게를 외치지만 그 끝은 언제나 허무와 무너짐입니다. 오늘 본문의 바벨탑 사건은 바로 그 인간의 교만, 하나님 없는 연합의 비극을 보여주는 거울입니다.
2. 본문 배경: 기술은 발전했지만 마음은 비어 있었다
홍수 이후 인류는 다시 번성하기 시작했고, 한 언어를 사용했습니다. 서로 소통할 수 있는 것은 하나님의 축복이었죠. 사람들은 벽돌을 굽고 역청을 사용하는 새로운 건축 기술을 개발했습니다. 문제는 그들의 마음에 하나님이 없었다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는 바벨탑 사건을 통해 우리 마음속 숨겨진 바벨탑은 무엇인지, 그리고 우리가 정말 쌓아야 할 것은 무엇인지 함께 살펴보겠습니다.
3. 첫째, 교만을 멀리해야 합니다
바벨탑을 쌓은 목적은 분명했습니다.
“우리 이름을 내고 온 지면에 흩어짐을 면하자.” (창11:4)
그들은 하나님의 이름이 아니라 자기 이름을 드러내려 했습니다. ‘하늘에 닿게 하자’는 것은 단순히 높은 건물을 짓겠다는 말이 아니라 하나님께 도전하는 마음이었습니다.
이 교만의 뿌리는 에덴동산까지 거슬러 올라갑니다. 사탄은 아담과 하와에게 “네가 하나님처럼 될 수 있다”고 속삭였습니다(창3:4–5). 인간은 하나님 없이도 스스로 완전해질 수 있다는 거짓말에 속아 넘어갔습니다.
유대 철학자 필로에 따르면, 사람들은 벽돌 하나하나에 자기 이름을 새겼다고 합니다. 그러나 탑이 무너지자 그 이름들도 함께 사라졌습니다. 인간의 명예욕이 얼마나 허망한지 보여주는 장면입니다.
팀 켈러 목사님은 말했습니다.
“인간의 가장 큰 죄는 하나님을 대신할 우상을 내면에 세우는 것이다.”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성공, 돈, 명예라는 우상에 **‘나의 이름’**을 새기고 있지는 않습니까?
사도 바울을 보십시오. 바리새인 중의 바리새인이었던 그는 예수님을 만난 후, 자신의 혈통과 학식과 명예를 배설물로 여겼습니다. 오히려 자신의 약함을 자랑했습니다. 그 약함 속에서 그리스도의 능력이 드러났기 때문입니다(고전15:10).
4. 둘째, 흩어짐을 두려워하지 말고 생명력으로 살아야 합니다
그들이 탑을 쌓은 두 번째 이유는 “흩어짐을 면하자”는 것이었습니다. 그들의 마음에는 불안이 있었습니다. 죄인은 항상 불안합니다. 그래서 스스로 안전을 확보하려고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이미 무지개 언약을 통해 다시는 물로 심판하지 않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하나님의 뜻은 흩어짐이었습니다.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창1:28, 9:1)
하나님은 우리를 공동체 속으로, 세상 속으로 파송하십니다. 우리는 숨어 있는 수도자가 아니라 세상으로 보내진 소금과 빛입니다(마5:13–14). 소금은 소금통 안에서만 머물면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세상 속으로 흩어져 들어가 부패를 막고 맛을 내야 합니다.
교회 울타리 안에서만 안전하게 머물려는 신앙은 바벨탑과 같습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생명력 있게 세상 속으로 들어가 가정에서, 일터에서, 학교에서 하나님의 형상을 드러내며 살아가기를 원하십니다.
5. 셋째, 하나님의 뜻에 순종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그들의 언어를 혼잡하게 하셨고, 결국 그들을 온 지면으로 흩으셨습니다(창11:6–8). 바벨이라는 이름은 ‘혼란’이라는 뜻입니다. 인간이 하나님 없이 무엇인가를 이루려 하면, 그 끝은 반드시 혼란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계획을 무너뜨려서라도 순종의 자리로 이끄십니다. 요나가 다시스로 도망쳤을 때 하나님은 폭풍과 큰 물고기로 그의 계획을 깨뜨리고 니느웨로 돌려보내셨습니다. 우리의 계획이 무너지는 순간이 하나님의 뜻이 시작되는 순간일 수 있습니다.
6. 결론: 바벨의 혼란에서 오순절의 연합으로
바벨탑 사건은 인간의 교만과 분열의 역사였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이 역사를 그냥 두지 않으셨습니다. 오순절 날, 성령이 임하시자 각기 다른 언어를 쓰던 사람들이 동일한 복음을 듣고 하나 되어 하나님을 찬양했습니다(행2:4).
진정한 연합은 성령이 임하고, 예수 그리스도가 주가 되실 때 가능합니다.
에베소서 4:3에서 바울은 말합니다.
“평안의 매는 줄로 성령이 하나 되게 하신 것을 힘써 지키라.”
교회가 하나 되기 위해 필요한 것은 프로그램이 아니라 성령 충만입니다. 성령이 충만할 때 우리는 서로의 다름을 사랑으로 품을 수 있습니다.
오늘 우리 마음속에도 보이지 않는 바벨탑이 있을 수 있습니다.
나의 이름을 높이고자 하는 욕망, 내가 만든 안전망, 내가 세운 계획들….
그 탑을 무너뜨리고, 그 자리에 하나님의 이름, 하나님의 나라를 세워야 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오늘 우리의 숨겨진 바벨탑을 하나님 앞에 내려놓고,
성령 충만함으로 하나님 나라를 세워 가는 은혜의 사람, 겸손의 사람 되기를 축복합니다.
3 months ago | [YT] |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