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형규 요한 (Yohan Ji)

안녕하세요. 이 채널을 만들고 아무 업데이트를 하지 못해 죄송한 마음에 있습니다. 로마에서 신학 공부를 하느라 음악 활동을 전혀 하지 못하고 있기에 새로운 컨텐츠가 없는 것 같습니다.

로마에 온지 1년 반정도가 지났는데 유학생활하며 느낀 단상을 적어보았습니다. 미약한 글이지만 이 채널에 구독하신 분들과 나누고자 합니다. 유튜브는 원래 영상을 올리는 곳이지만, 그래도 가끔씩 글을 써서 단상이라도 나눌까 합니다. 모두들 좋은 하루 되시기 바랍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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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학생활 단상: 부자와 라자로 이야기

# 루카 16,25
“얘야, 너는 살아 있는 동안에 좋은 것들을 받았고 라자로는 나쁜 것들을 받았음을 기억하여라. 그래서 그는 이제 여기에서 위로를 받고 너는 고초를 겪는 것이다.”
유명한 부자와 라자로의 이야기에 나오는 구절로, 지옥 불 속에서 고통 받는 부자에게 아브라함이 하는 말이다. 부자는 펄펄 끓는 지옥에서 잠시 목이라도 축이고 싶어서 아브라함에게 간절히 청하는데도, 아브라함은 저렇게 단호하다. '넌 그동안 좋은 것들을 누렸으니 이젠 나쁜 것을 느낄 차례다. 삶엔 균형이 있다..'
이곳 로마에서 유학 생활을 하며 저 말씀이 종종 생각날 때가 있다. 특히 토론식 세미나 수업이 끝나고 나면, 집에 돌아오는 길에 저 말이 생각나서 씁씁한 웃음을 짓곤 한다. 지금 내 모습이 마치 고통스러워하는 저 부자와 같기 때문이다. 나는 어떤 좋은 것들을 누렸고, 지금은 어떤 고초를 겪고 있는가.


# 좋은 것들
지난 약 10여년의 예수회 양성 과정을 돌아봤을 때, 나에게 가장 행복했던 순간들은 철학과 신학을 공부하며 사람들과 토론하던 순간들이었다. 철학기(첫 서원 후 3년간)엔 철학 공동체에서 함께 살던 수사님들과 일주일에 한번씩 철학 스터디 모임을 갖곤 했다. 일주일에 한두시간 정도의 짧은 만남이었지만, 여러 철학자들의 사상에 대해 나누고 그 핵심을 파악해보려 노력하고, 또 그것을 우리 삶에 적용해보는 흥미로운 시간이었다.
그리고 몇 년이 지나 신학 과정에 진입했을 때엔, 서강대학교 신학 수업 중에서도 토론식 수업들이 있었다. 아직도 기억에 남는 것이, 한 수업 중 저명한 독일 신학자인 칼 라너의 신학을 맡아서 발표를 준비했던 때다. 당시 발표를 준비하며 라너의 글을 곱씹고 발표할 내용을 정리한 뒤, 발표 당일에는 그동안 준비한 것을 이런저런 방식으로 풀어냈다. 끝나고나서도 여운이 오래갈 정도로 기쁘고 행복한 경험이었다. 깊은 사유의 세계에 들어가고, 또 그것을 남들과 나눈다는 것은 정말 대단한 기쁨이었다. 마치 맑고 깊은 사유의 우물을 발견하고, 그곳에서 물을 떠와 사람들과 나누는 느낌이랄까. 이는 어떠한 감각적 쾌락보다 만족과 기쁨을 주는 활동이었다.


# 나쁜 것들
그런데 이곳 로마에선 정확히 반대가 되었다. 내가 그토록 좋아했던 토론의 시간이 가장 큰 고통의 시간이 되었다. 그레고리안 대학에 일주일에 한번 있는 소규모 토론식 수업. 학생들과 교수가 서로 말을 주고 받으며 신학적 토론을 이어간다. 그런데 문제는 뭐라고 하는지 들리지가 않는다는 것이다. 이탈리아에 온지 일년 반이 지났고, 그간 매일 열심히 이탈리아어를 공부했고, 이젠 일상생활의 대화엔 어느정도 자신이 붙어서 언어를 꽤 잘한다고 생각했는데 착각이었다. 수업 시간엔 여전히 이태리어가 한 귀로 들어와서 한 귀로 흘러간다.
지난 주는 공교롭게도 라너의 신학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이었다. 라너에 대해 술술 말하는 (나를 제외한) 학생들이 그렇게 위대해 보일 수가 없었다. 한국에서는 라너에 대해 1시간동안 혼자서도 떠들던 나였는데, 이젠 아무 말도 못하는 바보가 되어 그저 가만히 자리만 지키고 있었다. 그런데 이 시간의 하이라이트(창피함의 최고봉)는, 그렇게 가만히 앉아만 있는 나에게 교수가 “우리 조용히 있는 요한, 분명히 무언가 한 마디 하고 싶은 것이 있을거에요. 지금 우리가 나눈 이것들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세요?”할 때다. 마음 속으로는 “나한테 말걸지 마쇼”라고 대답하고 싶지만, 그럴 순 없기에 당황한 나는 무언가라도 말하려 한다. 학생들의 시선이 나에게 향한다. 떠오르는 이태리 단어들이 없어 이것저것 생각나는 것(그나마 쉬운 단어들)을 뱉는다. 아마 이탈리아 학생들에겐 이렇게 들렸을 것이다. “엊,, 쭤는,, 화느늼께서,, 예쑤뉨께서.. 우뤼에궤… 이 말쑤물 통훼쒓...” 쥐 죽은 듯 조용히 있다가 이런 뻔한 말들만 뱉어내고 나면, 오히려 가만히 있을 때보다 더 창피해진다. 이 세미나 수업은 진퇴양난이다. 남들 다 말하는 시간에 나만 가만히 있기도 창피하고, 그렇다고 뭐라도 말하면 말을 못해서 더 창피하고. 어디로 가야하나. 공부를 그만두어야 하나.


# 좋은 것과 나쁜 것
그래서 세미나 수업이 끝나고 나면 저 말씀이 사무치게 다가오는 것이다. 아, 나는 그간 참 좋은 것을 겪었구나, 그리고 이젠 나쁜 것들을 겪고 있구나. 그런데 한가지 더 중요하게 느끼는 것은 이 점이다. 내가 그토록 행복해하며 토론에 참여했던 그 한국에서의 시간들에도, 누군가는 그 토론식 수업 때문에 고통을 겪었으리라는 것. 나는 그분들에 대해 전혀 의식하지 못했었다. 마치 부자가 자기 집 문 밖에 있던 라자로, 곧 개들이 종기를 햝고 있던 라자로를 전혀 보지 못했던 것처럼 말이다.
유학 생활을 하며 내 신학적 지식이 느는 지는 잘 모르겠는데(언어가 안되니 공부가 늘고 있는지는 진정 의문이 든다), 무언가 느는 것이 있다면 이런 체험들이 아닐까 싶다. 우리 인간이란 존재는 때때로 너무나 우둔해서, 자신이 직접 겪어보지 않는한 다른 이의 마음을 헤아리지 못한다. 인터넷 커뮤니티에서는 오죽하면 '미러링'만이 답이라고들 할까. 이런 면에서 보면, 나이를 먹어가며 이런저런 경험을 쌓으며 좌절과 아픔을 겪는 것이 나쁜 것만은 아닌 것 같다. 비슷한 아픔을 겪는 사람들에 대한 이해가 넓어지기 때문이다.


# 말랑말랑한 심장을 향해
한편으로 다시 생각해보면, 내가 지금 이곳 로마에서 겪는 것이 이토록 고통스러움에도 불구하고 사실 나쁜 것이 아니라 좋은 것일수도 있으리라. 그리고 내가 좋은 것이라 생각했던 그 우쭐우쭐하던 순간들이 사실은 어떤 면에서는 인격 성장에 방해가 되는 것이었을 수도 있다. 바람이 있다면, 이 모든 경험을 통해 복음 속의 저 부자와 같은 나의 옹졸한 마음이 조금씩 더 말랑말랑해지는 것이다. 그리하여 부자가 했던 실수, 곧 우리 삶에서 마주하게 되는 수많은 라자로들, 억눌리고 아파하는 이들을 그냥 지나치지 않는 것이다.
예수님께서는 이 부자와 라자로의 이야기를 통해 어쩌면 이런 이야기를 하고 싶으셨는지도 모르겠다. 곧, 부자처럼 얼어붙은 마음을 갖지 않고 착한 사마리아인처럼 말랑말랑한 마음을 가지라고. 삶의 길에서 고통 받는 누군가를 마주할 때 가엾은 마음이 드는 것에 우리의 진정한 행복이 달려 있다고. 부자의 진정한 비참함은 지옥에서 겪는 그 불에 있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행복하다고 착각했던 그 순간 속에 간직했던 얼어붙은 심장에 있는 것이라고.

4 weeks ago | [YT] | 106



@Melissa.N_

얼어붙은 마음을 갖지 않고, 말랑말랑한 심장을 향해가기❤️ 신부님께서 쓰신 글을 읽고나니 저를 한번 되돌아 보게 되네요🙂🙂 좋은 말씀 감사드리고, 타지에서도 늘 건강하시길 기도 드리겠습니다

4 weeks ago | 3  

@배쨩핑

건강하시길 기도드립니다. 소식전해주셔서 감사합니다

4 weeks ago | 2  

@agnesjung4413

신부님 미사곡을 자주듣고있습니다 너무나 아룸다운 멜로듸 선율에 충격이 무척 컸습니다 감사드립니다 그곳에서 힘든생활도 주님께서 항상 신부님과같이 동행해주시기를 기도드리겠습니다

4 weeks ago | 3  

@min-ls1wz

글 감사합니다~ 아들이 고3이라 수험생 기도하고 있는데 신부님 기도도 같이 드려야겠네요^^ 멀리서 응원합니다!

4 weeks ago | 2  

@바다의별지우

요한신부님! 말씀으로 오늘 저의 하루를 열어주시네요. 돌이켜보니 은총이었고 살아가다보니 주님 예비하신 길은 분명 있더라구요.. 아마 그 길에 서 계시리라 믿습니다. 성모님이 제일 사랑하는 사제의 길을 걷는것만으로 축복입니다.. 십자가 안에 계심도 축복일테지요. 거룩한 사제 되시길 오늘 기도중에 기억하겠습니다. 아멘!

4 weeks ago | 1  

@anessl1258

아!신부님 소식에 반갑고 하느님께 감사드립니다. 기도에 집중하고 잠심하는데 신부님 음악이 많은 도움이 되어서 오랜만에 방문했는데 그동안 아무런 게시물도 없어서 로마에서 어떻게 지내실까 궁금해하면서 기도드렸는데 이렇게 소식을 전해주시니 하느님섭리는 놀랍습니다. 신부님 음악은 기도안에서 하느님을 묵상하고 제 영혼이 하느님께로 가까이 가는데 정말 많은 도움이 됩니다. consolation을 처음 들었을때는 연주곡을 듣고도 눈물이 날수 있다는 사실에 놀랐고 아주 깊은 여운에 한동안 멍하니 있었던 기억이 납니다. 건반을 누를때 손가락의 무게감과 바이올린 활이 현에 닿는 소리마저 음악이 될수 있다는 것도 처음 느꼈습니다. 정말 말그대로 많은 위안을 받은 곡입니다. 미사곡 1-5번 트랙도 너무좋아서 기도드릴때 자주 틀어놓고, '주님 받으소서'와 '그리스도의 영혼은'도 개인적으로 이냐시오성인을 좋아해서도 겠지만 성인의 삶이 그려지면서 깊은 감동과 감격속에서 기도를 바칩니다. 이렇게 귀한 곡을 써주셔서 보잘것없는 한 영혼이 주님께 자신을 바치고자하는 마음에 열성을 불러일으켜주신 신부님께 감사하는 마음으로 이 글을 전합니다. 주님은 찬미받으소서!!

4 weeks ago | 2  

@AspendosAntalya-h3u

신부님 묵상글 감사합니다!! 외국 살이 하다 보면 가장 큰 어려움이 언어 때문이지 않을까 싶어요. 저도 독일 산지 10년이 다 되어가지만 항상 언어가..ㅠㅠ 항상 응원합니다!!❤

4 weeks ago | 2  

@라벤더-o6n

신부님 음악을듣고 팬이되었는데 이렇게 글 올려주셔서 감사합니다 늘건강하세요

4 weeks ago | 1  

@youngnakim4868

신부님, 소식 전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예전에 올려주신 경당사진도 제 안에 욕심이 차오를 때마다 들여다보며 귀한 성찰의 양식이 되었는데 오늘 귀한 묵상의 글을 나눠주셔서 얼마나 감사한지 모르겠습니다. 모든 의미있는 성장은 왜 반드시 고통과 눈물을 담고 있는지...글 속에서 신부님의 고군분투가 고스란히 느껴집니다. 신부님의 영육간에 건강과 평안을 위해 기도로 함께 하겠습니다.

4 weeks ago | 2  

@Anna-zk8en

신부님 음악을 종종 들으러 왔다가 신부님 묵상글을 읽게되어 너무 좋습니다. 그 곳에서 느끼는 솔직한 글이 마음에 와닿습니다. 저도 짧지 않은 유학 경험이 있는데, 저도 처음엔 언어 때문에 무척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었어요. 하지만 매 년 지금처럼 겸손되고 성실한 마음으로 꾸준히 노력하신다면 시간이 쌓이면서 언어 실력도 꽤 많이 느실 거라 믿습니다. 유학생이면 누구나 겪는 일이니 용기내시고 계속해서 말랑말랑한 마음으로 주님의 손길도 많이 느끼시는 유학 생활되시길 바랄게요

3 weeks ago | 0  

@윤지희-v2w

신부님이 저 일상의 단상들을 이탈리아를 섞어 쓰셔서 우리를 당황하게 만들 날이 오기를... 신부님 미사곡이 문득 생각나서 듣게 되는 날이 있습니다. 건강하게 돌아오세요❤😂

4 weeks ago (edited) | 1  

@김지혜-i1u2k

신부님 말씀의 마지막 문단은 캡쳐해두었습니다. 두고두고 읽고싶어서요. 타인의 고통에 욥의 친구들과같은 해석만을 쉽게 던지는 틈속에서 신부님 말씀만은 마음깊이 닿았고 위로였습니다. 감사드립니다.

4 weeks ago | 3  

@소영엘리사벳

✝️찬미 예수님 와우 신부님 소식 감사드립니다 😃😁🤭 이렇게 긴 글을 올려주셔서 넘 좋네요. 아껴서 한자한자 읽으며 왠지 상상이 되어 킥킥거리며 웃음이😂 한국은 내일부터 엄청 추워질거라고 해요. 그곳은 어떤가요? 늘 건강하시길 기도합니다. 소식 감사드립니다. 신부님들의 묵상글은 늘 재밌고 반가워

4 weeks ago | 2  

@moonsookkang8588

신부님 너무너무 반갑습니다 성경 말씀도 가슴에 와닿고 공부 중 틈틈이 소식도 전해 주세요. 기도하겠습니다.~^^

4 weeks ago | 1  

@angela-v9w8w

늘 궁금하고 기다려지던 신부님을 만난 지금 제 마음은 옥상에서 폴짝뽈짝 뛰셨다는 그 마음입니다 나이가 들어도 부자와 나자로의 삶을 반복하며 살고 있습니다 기다리는 이곳을 위하여 언제 어느곳에서나 늘 건강하게만 잘 지내시다 오세요~~♡♡♡

4 weeks ago | 3  

@안계옥-s9s

신부님~바쁘신 중에도 귀한 말씀 올려주셔서 감사합니다. 영적, 내적, 육적으로 건강하게 지내시길 기도드립니다.

4 weeks ago | 3  

@김창희-o7c

신부님 지나고보면 지금이 '좋은 것'일 수도 있습니다. 주님은 우리에게 좋은 것만 주시기를 원하시니까요~ 신부님 건강하시고 힘내세요. 묵상글이 내 삶의 묵상이 되네요. 넘 감사합니다.

4 weeks ago | 2  

@조현미-s3n

신부님 말씀 깊이 공감하며 묵상해봅니다. 항상 영육간의 건강하심을 기도드립니다

4 weeks ago | 2  

@mirka8637

신부님 말씀 너무 공감됩니다~ 저도 비슷한 경험이... 근데 지나놓고 이제와서 생각하면... 그때 좀더 뻔뻔할 걸... 하는 후회가 듭니다 😅 언어는 '기세'라는 말이 있더라구요... 자신감 있게!! 뻔뻔하게 뱉으셔요~ 교수님과 학우들도 그런 모습을 더 좋아하실 거예요~ 🙂 주님의 은총과 가호가 늘 신부님과 함께 하길 기도합니다

4 weeks ago | 2  

@이문용-d3p

신부님 감사합니다.

4 weeks ago |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