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비 니 🌱

다육이처럼 하루를 심다 #127

오늘은
몸이 유난히 무거운 날이었다.

날씨는 분명 따뜻했는데
내 안은 비 오기 전처럼
기압이 낮고, 숨이 찼다.

괜히 아무 일도 없는데
모든 게 버거워지고
조금만 건드려도
쏟아질 것 같은 하루.

그래도 다육이처럼
오늘은 애써 웃자라지 않기로 했다.

햇빛이 있어도
뿌리가 쉬고 싶은 날이 있다는 걸
이제는 안다.

오늘 심은 건 성장이 아니라
‘버텨낸 하루’ 하나.

그걸로 충분한 날이다.


🌱 글 - 비니정원

17 hours ago | [YT] | 16

🌱 비 니 🌱

다육이처럼 하루를 심다 #126

오늘은
나에게 물을 주지 않은 채
하루를 넘겼다.

괜찮다는 말도
잘하고 있다는 확인도
모두 내일로 미뤄두고
조용히 말라갔다.

다육이는
아프다고 말하지 않는다.
다만
잎의 각도로
스스로를 설명할 뿐이다.

나는
그 신호를
오늘에서야 알아봤다.

아무 일도 없었던 하루에도
뿌리는 자라고 있었고
겉으로 보이지 않는 동안에도
시간은 나를 지나고 있었다는 것을.

그래서 오늘을
실패라 부르지 않기로 했다.

이 하루는
버려진 날이 아니라
심어 둔 날.

내일의 나에게
조금 더 단단한 흙이 되기를 바라며
나는 오늘을
조용히 덮는다.


🌱 글 - 비니정원

1 day ago | [YT] | 13

🌱 비 니 🌱

다육이처럼 하루를 심다 #125

오늘은
잘 자라지 않아도 괜찮은 하루였다

빛이 모자라면
잎을 접어
몸 안의 수분을 지키듯

마음이 넘칠 것 같을 때는
말 대신
고요를 선택했다

서두르지 않아도
살아 있는 것만으로
이미 충분하다는 걸
다육이는 늘
자기 몸으로 증명한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뿌리는 오늘도
천천히 일을 하고 있을 테니

나는
오늘의 하루를
작은 화분 하나에 담아
조심스럽게 심어 두었다

내일은
조금 덜 흔들리는 것만으로
충분한 날이기를


🌱 글 - 비니정원

2 days ago | [YT] | 13

🌱 비 니 🌱

다육이처럼 하루를 심다 #124

물 주는 날도 아닌데
나는 화분 앞에 오래 서 있었다.

오늘은 마음이 먼저 말라버린 날.
할 일은 많았지만
손끝은 좀처럼 움직이지 않았고,
괜찮은 얼굴 뒤에서
작은 잎 하나가 조용히 접혔다.

다육이는 말이 없다.
그저 오늘도 햇빛을 받는다.
어제보다 조금 더여도,
그대로여도 괜찮다는 얼굴로.

성장은 늘 눈에 띄지 않는다.
멈춘 듯 보이는 날에도
안에서는 분명 무언가가 진행 중이다.
뿌리는 뿌리의 일을,
잎은 잎의 시간을 살아낸다.

오늘의 나는
눈에 보일 만한 성과는 없었지만
하루를 포기하지는 않았다.
숨 쉬었고, 견뎠고,
끝내 오늘을 심어냈다.

내일은 내일의 햇빛이 오겠지.
오늘은 이만하면 충분하다.


🌱 글 - 비니정원

3 days ago | [YT] | 18

🌱 비 니 🌱

다육이처럼 하루를 심다 #123


오늘은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하루를 화분 위에 내려놓았다.

잘 자라야 한다는 다짐 대신
흙이 식지 않도록
손바닥의 온기만 남겼다.

빛이 모자란 날에는
조금 느리게 숨 쉬어도 괜찮다고,
물을 제때 주지 못한 날에도
이미 가진 것으로
버틸 수 있다고
스스로에게 말했다.

다육이는
아무것도 없는 얼굴로
자기 안에 하루를 저장한다.
상처와 햇빛과 기다림이
조용히 수분이 된다.

오늘의 나는
눈에 띄지 않게 자랐지만
무너지지 않았고,
불필요한 욕심을 덜어내며
형태를 지켰다.

내일은
더 빛나지 않아도 된다.
오늘을 무사히 품었으니
이 하루는 이미
잘 심어졌다.


🌱 글 - 비니정원

4 days ago | [YT] | 14

🌱 비 니 🌱

다육이처럼 하루를 심다 #122

오늘은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날이었다.

그래서 더 자주
멈춰 섰다.
화분 앞에서,
시간 앞에서.

변화가 없는 것이
불안이 될 때,
나는 아직 오지 않은 계절을
손으로 당기려 했다.

다육이는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다만
자라는 방향을
서두르지 않는다.

나는 오늘의 나에게
묻지 않고
가만히 놓아두는 쪽을 택했다.

보이지 않는 뿌리는
설명 없이
자기 속도로
흙을 밀어내고 있을 것이다.

오늘은
아무것도 주지 않았다.
그 대신
기다림이 남았다.

다육이처럼
이 하루도
말없이
심어둔다.


🌱 글 - 비니정원

5 days ago (edited) | [YT] | 20

🌱 비 니 🌱

다육이처럼 하루를 심다 #121


- 겨울을 견디는 일

어느 겨울은
유난히
햇살이 얇다

창가에 놓인 화분처럼
말수가 줄어든 날들
서로의 안부를 묻는 일조차
조심스러워진 계절

누군가는
여전히 빛을 많이 받고
누군가는
그림자 쪽에 머문다

그 차이가
누구의 잘못은 아니라는 걸
식물은
말없이 가르쳐준다

다육이는
풍성한 날에도 자라지만
아무 일 없는 날에도
뿌리를 키운다

지금은
잎보다
뿌리가 자라는 시간

보이지 않는 곳에서
내일을 준비하는 계절

모든 날이 환하다면
겨울은 태어날 이유가 없고
모든 사람이 웃고 있다면
서로를 안아줄 일도
없었을 것이다

오늘은

조금 느리게,

조금 적게,

그래도
멈추지 않고

다육이처럼

하루를
심는다


🌱 글 - 비니정원

6 days ago (edited) | [YT] | 19

🌱 비 니 🌱

다육이처럼 하루를 심다 #120


나는
상처를 남기려 하지 않았고
흔들고 싶은 마음도 없었다

다만
오늘의 하루가
조금 메말라 보인다고
빛이 너무 곧게 내려온다고
조심스럽게 말했을 뿐이다

그 말은
잎 위에 남지 못하고
바람에 쓸려
나를 향해 되돌아왔다

설명은 흙 밖에서 말랐고
의도는
아무도 보지 않는 곳으로 가라앉았다

조심은
항상
사건 뒤에 심어진다

나는 오늘
말을 거두는 법은 배웠지만
하루를 포기하는 법은
끝내 배우지 못했다

그래서
아픈 채로
하루를 심었다

아무도 알아주지 않아도
이 하루는
뿌리를 내릴 것이다


🌱 글 - 비니정원

1 week ago | [YT] | 17

🌱 비 니 🌱

다육이처럼 하루를 심다 #119


오늘은
추웠다

흙은 말이 없고
시간은 낮게 흐르고

다육이는
움직이지 않은 채
그 안에 남아 있었다

손을 대지 않은 자리에서
작은 숨 하나

나는
하루를
조금 오래
그 자리에 두었다



🌱 글 - 비니정원

1 week ago | [YT] | 12

🌱 비 니 🌱

다육이처럼 하루를 심다 #118


처음엔
아무것도 달라 보이지 않았다

빛도, 색도
말해주지 않는 자리에서
그저 같은 하루를 견뎠을 뿐

시간이 흐르자
누군가는 물들었고
누군가는 끝내 그러지 않았다

아름다움은
선택이 아니라
버텨낸 흔적이라는 걸
그때서야 알았다

사람도
조용히 나이를 먹으면 좋겠다
말이 아니라
시간으로 증명하면서

하지만 세상은
믿음보다 빠르게 등을 돌리고
진심보다 먼저 소문을 남긴다

그래도 나는
쉽게 변하지 않기로 했다
홀로 깊어지는 쪽을 택해
아무도 보지 않는 자리에서
단단해지기로


🌱 글 - 비니정

1 week ago | [YT] | 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