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그리고 일상을 그림으로 담다


세상풍경

오늘 엄마랑 서울대학병원에 가고 있었다.
나는 버스 창밖으로 서울 구경을 하고 있었는데
버스가 서서히 속도를 줄이기 시작하더니,
버스 정류장이 아닌 도로 가장자리에 멈춰 섰다.
버스기사 아저씨께서 버스에 타고 있던 사람들에게
모두 다 내려서 각자 알아서 걸어가라고 했고
사람들은 아무 말 없이 내리기 시작했다.
나도 엄마를 따라 내렸다.
근데 버스가 서서히 멈추기 시작할 때부터
창밖으로 평소와는 다른 도로 상황이 보이기는 했었다.

넓은 도로에는 몇 개의 바리케이드가 세워져 있었고,
군데군데 연기가나고 있었고,
그리고 몇 명의 대학생 오빠들이 각자 흩어진 상태에서
큰 소리로 무언가를 외치고 있었다.
경찰차와 경찰들, 그리고 총을 든 군인들이 서 있었고,
군데군데 어떤 아저씨들도 몇 명씩 보였다.

버스에서 내린 사람들은 제각각 갈 길을 가기 시작했다.
엄마와 나 그리고 몇몇 사람들은 담길을 따라 병원을 향해 걸어가고 있었는데 군인아저씨 한 명이 총으로
빨리 지나가라며 우리를 향해 재촉했다.
나는 엄마 손을 꼭 잡았다.
엄마도 내 손을 꼭 잡아 주셨다.

그때, 어떤 아저씨 서너 명이 엄마와 내가 있는 쪽으로 빠른걸음으로 뛰어오고 있었는데, 그 모습이 뭔가 이상해 보였다.
‘저게 뭐지?’ 싶어서 계속 쳐다 봤는데
그것은

아저씨 두 명이 어떤 오빠의 팔을 양쪽에서 꽉 붙잡고,
또 다른 아저씨 한 명은 뒤에서 머리채를 쥐어잡은 채 뒤로,
그러니까 뒤로 잡아 젖힌 상태로 어디론가 끌고가고 있는 상황이었던 것이다.
그리고 바로 몇 걸음 채 안 되는 엄마와 내 앞을 지나갔다.

사람을 저렇게 끌고 갈 수 있다니.
처음보는 그 끔찍한 장면이 너무나 무서웠다.
그리고 그 오빠가 너무 아플 것 같아 불쌍해 보였다.
엄마와 나는 계속 걸어가야 했어서 그 오빠가 어디로 끌려갔는지 끝까지 보지는 못했다.

그 오빠는 어떻게 되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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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5년 중학교 2학년 때
수술을 받기 위해,
지방에서 서울대학교병원을 오가던 중에
첫번째로 목격한 민주화운동의 현장이었다.

그 당시 일기를 썼더라면
이렇게 쓰지 않았을까 라고 가정하여
써 보았다.

오랜 세월이 흐르면서 그 당시 목격했던 상황에 대해 좀 더 자세히 이해하게 되었다.

도로가 한적했던 것은 시위하던 학생들이 거의 다 흩어진 상황에서
대학생 몇 명만이 그 넓은 도로 위에서 넓게 포위된 상태였고,
사복경찰들이 그 학생들을 잡아가려고 기회를 보던 중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대학생들은 끝까지 투쟁하고 있었다.

빨리 갈길 가라며 재촉했던 군인과 경찰들조차
그 순간 그 학생이 처참하게 끌려가는 모습을 지켜보고 있었기에 나 또한 그 상황을 가까이에서 볼 수 있었고
이렇듯 잊혀지지 않는 기억으로 남았다.

1985년 중학생 때
그날의 시점으로 쓴 일기와
민주화운동을 직접 목격한 한 장면
그리고
2024년 12월 민주주의 현장을 그려 본 그림과 함께
공유해 본다.

이젠 모두가
민주화 운동에 앞장 서셨던 분들이
어떠한 고초를 겪었는지 알고 있다.
그래서 나는 내가 본 그분의 처참한 순간을
그림으로 그리는것은 왠지 도리가 아닌것 같다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최근
‘일상을 역사로 만드는 그림일기’ 워크샵에서
전태일 열사의 풀빵이야기를 들었다.

일기쓰기의 관점에서 볼 때
풀빵을 먹었다는 사람의 기록이 없는 건
일기를 쓰지 않아서 혹은 누군가 썼는데 발견되지 않아서라는.
더하여, 잠잘 시간도 모자랐을 그 당시 노동자들의
일기 쓰는 일상이란 쉽지 않았음은 당연했기에.

그러한 여러 생각들이 이어지다가,
그리하여 민주주의를 주셨으니
잘 받았음을 증명해 드리는 게
더 마땅한 도리이지 않았을까.
때 늦음이긴 하지만
당시의 목격을 그림으로 남겨본다.

1 year ago | [YT] |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