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CI (AbsoluteCinema)

Understanding Awe


앱시 AbsoluteCinema

안녕하세요 앱시입니다!

오랜만에 인사드립니다...그간 본업 작업하느라 많이 바빴는데 이후 코로나까지 걸려서 업로드가 생각보다 많이 늦어졌네요ㅠㅠ

구독자분들께 정말정말 죄송하다는 말씀드립니다🙇‍♂️

채널 방향성에 대한 고민도 많이 했는데, 앞으로 당분간은 <아노라> 분석때처럼 영화의 '한 장면'에 집중해서 그 장면이 왜 저에게(또는 많은 관객들에게) 인상 깊게 다가왔는지를 해설해보려고합니다!

그럼 다음 영상 주제를 아래에 살짝 공개합니다...두구두구

구독해주셔서 언제나 감사드립니다!


앱시 드림

3 months ago | [YT] | 17

앱시 AbsoluteCinema

<첫 트로피>
축구는 발로 하는 스포츠입니다.

너무 당연한 얘기지만, 이는 축구를 다른 구기 종목들과 차별화 시키는 점 중 하나입니다. 정밀한 조작이 가능한 손에 비해 발은 투박하기에, 발로 공을 다루면 통제를 벗어난 예측불허한 상황이 훨씬 늘어납니다. 득점 자체가 쉽게 터지지 않는다는 점과 22명에 이르는 인원이 동시에 투입된다는 점, 경기장이 이 22명이 커버하기에 너무 좁지도 않고 너무 넓지도 않은 오묘한 크기를 지닌다는 점들 때문에 축구의 카오스는 더욱 증가합니다. 그래서 발생하는 온갖 극적인 드라마들은 축구가 전세계에서 가장 사랑 받는 이유 중 하나죠.

손흥민 선수는 그런 축구계에서 독특한 위치를 점한 선수입니다.

아시아인, 양발잡이, 가공할 스피드스터, 강력한 중거리 스페셜리스트라는 매우 유니크하고 매력적인 프로필. 여기에 전형적인 내성적 아시아인(그의 선배 박지성으로 대표되는)이 아닌 기이할 정도의 친화력을 가진, 항상 웃고 예의 바르며 아이들을 사랑하는 호감형 ‘인싸’ 선수라는 신선함. 이는 그가 국적과 연령, 성별을 불문하고 사랑 받는 선수가 되도록 만들었습니다.

그런데 리그를 대표하고 득점왕까지 수상할 실력을 가졌음에도, 그에게 항상 따라 붙는 꼬리표는 ‘무관’이었습니다.

이는 이미 ‘무관’의 대표 중 하나인 소속팀 토트넘의 이미지 때문에 아주 치명적이진 않았습니다. 하지만 오히려 이 때문에 팀을 떠나야하는 것이 아니냐는 논쟁이 매 시즌 펼쳐졌고, 심지어 가장 든든한 동료였던 팀의 슈퍼스타이자 토트넘 로컬보이인 케인은 끝내 팀을 떠나 우승 가능성이 99%인 뮌헨으로 이적해버렸습니다.

그런데 그런 손흥민이 인생 첫 우승을 했습니다.

놀라운 것은 이번 시즌이 토트넘이 가장 팀 전력이 뛰어날 때도, 말도 안되는 극장 역전골로 꿈에 그리던 결승에 진출했을 때도, 손흥민 본인의 폼이 가장 최상이어서 득점왕까지 달성한 시즌도 아니라는 것.

10년간 철강왕이었던 몸은 낡아서 잔부상에 신음하고, 득점 기록은 커리어 가장 밑바닥에 가까웠으며, 모두가 고집불통 감독을 의심하고 동료들은 경험도 없는 코흘리개 소년들인 시즌, 리그에서 강등 직전으로 내려간 시즌에 유럽대항전 우승컵을 들게 된 것입니다.

단 하룻밤만에, 손흥민은 적기에 팀을 나가지 못하고 무관 지옥에 갇힌 불운하고 미련한 선수에서 누구보다 끝까지 팀을 지탱하며 결국 오랜 숙원을 풀어준 로맨티스트이자 전설이 되었습니다.

공교롭게도 경기장에서 빛나던 토트넘의 슬로건이 ‘To Dare Is To Do’ 입니다. 감히 큰 꿈을 꾸는 것 자체가 이미 그것을 이루는 첫 발걸음이라는, 항상 자신을 의심하는 사람들과 스스로에게 둘러쌓여 압박을 받아 온 울보 손흥민의 기적 같은 오늘에 정말 잘 어울리는 말입니다.

인생은 마치 무회전으로 흔들리며 날아오는 축구공 같습니다. 알 수도 없고 통제할 수도 없습니다. 하지만 포기하지 않았기에 가장 예상치 못한 순간에 가장 큰 영광을 얻은 손흥민을 보며, 오늘 전세계 수많은 사람들은 감히 꿈을 꿔봅니다. abci

6 months ago (edited) | [YT] | 22

앱시 AbsoluteCinema

<변화(變化)>
봄꽃가루가 한창 날리는 계절입니다.

계절이 바뀌고 날이 풀리며 없던 꽃이 피어나는 그 변화만으로(심지어 매년 똑같이 찾아오는) 사람들이 얼마나 마음이 열리고 큰 기쁨을 느끼는지를 생각해보면, 사람의 정신이라는 것이 참으로 흥미롭습니다. 우리는 무언가 계속 변화하는 것을 원합니다. 새로운 것을 발견하고 그곳에서 자극을 받으며 놀라거나 감탄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책을 읽고 여행을 떠나며 사람들을 만납니다.

옛날 가옥들을 보면 집 중심에 넓직한 마루가 있습니다. 그 앞은 바로 마당을 통해 외부와 연결되어있습니다. 이 공간을 통해 바깥에서 변화하는 자연을 보고 시간의 흐름을 짐작하거나 그저 그 풍경을 감상했다고 하죠. 과거 사람들은 마당을 넘어 숲, 바다를 보며 신선한 자극을 즐겼습니다. 자연은 절대 고정되어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미세하더라도 끊임없이 움직이고 변화하며 흘러갑니다. 똑같은 바람은 없고 똑같은 파도는 없습니다. 영원할 것 같은 태양도 수소를 소진하고 식고, 자연이라고 느껴지지 않는 검은 블랙홀마저 수명을 다하면 붕괴합니다.

그런데 현대로 오며 우리는 도심 속에서 살게 됐고, 자연과 멀어졌습니다. 바깥 풍경을 보는 창이나 마당이 있던 집의 중심엔 TV가 놓였죠. 폐쇄되고 고정적인 안전한 인공 환경 속에서, 끊임 없이 변화하는 것은 모니터 스크린이 유일하기 때문입니다. TV를 넘어 스마트폰까지 오면서 우리는 가장 작아진 화면 안에서 그 어느 때보다 많은 변화를 응시합니다. 인간의 본능 상 새로운 무언가에서 눈을 뗀다는 것은 불가능 합니다. 하지만 자연의 속도를 몇천배나 뛰어넘는 광속의 파도는 도무지 올라탈 수 없는 폭류입니다. 잠시도 눈을 뗄 수 없는 전세계의 자극이 24시간 사시사철 쏟아지니까요.

바닷가에서 파도를 몇시간이고 지켜볼 수 있는 이유는, 항상 바뀌기에 지루하지 않으면서도 그 변화가 우리에게 부담을 주지 않기 때문입니다. 마치 카페에서의 백색 소음과 같습니다. 뇌를 잠재우진 않지만 바짝 긴장하게 만들지도 않는 적당한 자극.

그래서 전 제가 감내할 수 있는, 적당히 변화하는 자연이 즐겁습니다. 그걸 새삼스럽게 깨닫게 해주는 봄꽃들도 반갑습니다. 5월입니다. abci

7 months ago (edited) | [YT] | 17

앱시 AbsoluteCinema

<공백의 충만>

작년에 배우 버나드 힐이 79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타이타닉>의 선장, <반지의 제왕>의 세오덴 왕 역으로 잘 알려진 배우입니다. 그는 대스타나 주연급 배우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인상 깊은 조연으로 많은 사람들에게 인상을 남겼습니다. 그래서 유튜브에 있는 ‘로한 기마대 돌격씬’ 같은 그가 생전 출연한 명장면들의 최신 댓글들엔 소식을 듣고 찾아온, 왕을 추모하는 조문행렬이 길게 이어지곤 했습니다.

배우, 특히 영화 배우란 정말 흥미로운 직업입니다. 돈을 받고 가짜로 만든 세트장 안에서 가짜 고통에 눈물을 흘리며 가짜 정체성을 연기하는데, 모든 것을 다 알고 찾아오는 관객들은 그 어떤 진실보다도 그들에게 깊게 몰입하고 열광합니다. 심지어 배우가 역할과 전혀 다른 삶을 살기도 하고, 늙으면 영화 속의 모습은 찾아볼 수도 없게 변하거나 사망하는 불일치성도 큰데 말이죠. 그런데 어쩌면 그 한계가 인간을 매료시키는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만약 벚꽃이 영원히 아름답게 피어있다면, 사람들은 지금처럼 꽃구경을 떠나지 않을 것입니다. 금방 시들어버리기에 우리는 급하게 꽃을 보러 나가고 떨어지는 꽃잎을 보며 애틋함을 느낍니다. 인간의 젊음과 인생도 마찬가지입니다. 시간 앞에서 사구(砂丘)처럼 서서히 날려 사라지는 유한한 존재를 보며 우리는 온갖 감정을 느낍니다.

배우도 똑같은 필멸의 존재입니다. 그런데 그들의 순간들은 필름에 기록되어 그들보다 오래 남아 전해집니다. 그렇게 생생히 기록된 그들 영혼의 일부를 볼 때 우리는 묘한 노스텔지아에 빠집니다. 다가올 미래의 죽음은 전혀 생각도 안하는 듯한 배우의 젊은 순간. 그와 동시에 떠오르는 것은 그 모습을 관람하던 내 과거의 순간들...그렇게 노스텔지아는 더욱 깊어집니다

어떨 때 배우란, 똑같은 모습으로 영원히 남아있는 만화 캐릭터들 보다도 생명력이 강해 보입니다. abci

8 months ago (edited) | [YT] | 19

앱시 AbsoluteCinema

<리액션>
주말에 디즈니+를 둘러보다가 디즈니에서 일하는 직원들을 다룬 단편 다큐 모음집을 봤습니다. 그런데 생각보다 훨씬 더 흥미롭고 신기한 다큐였습니다. 수중 어트랙션을 수리하는 다이버나 사탕 제조 전문가, 스턴트용 로봇 공학자 등 별의별 직업들이 다 나오기 때문이죠. 세상에 이렇게나 다양한 직업이 있다는 걸 잊고 살았습니다. 특히 흥미로운 점은 그 영상에 나온 사람들 대다수가 20년 넘게 디즈니에 재직 중인 사람들이었는데, 자신의 일에 너무 만족하고 자신이 그 일을 하기 위해 태어났다고 굳게 믿더라구요.

그 중 한 명은 극장 오르간 연주자 'Rob Richards'입니다. 보통 오르간도 아니고 무성 영화 시절 때 부터 내려오는, 버튼이 백개 정도는 달린 고전적인 오르간입니다. 그런데 그는 메인 공연자도 아니고, 어린이들을 위한 뮤지컬이나 연극이 시작하기 전 사람들이 착석하는 시간에만 연주하며 사람들을 집중시키고 그 시간이 어색하지 않게 돕는 역할을 할 뿐입니다. 게다가 연주하는 곡도 매일 똑같은 디즈니 테마곡 메들리 뿐이죠. 실제로 주변 사람들이 몇십 년 동안 디즈니 곡만 연주했는데 지겹지 않냐고 물어본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는 절대 질리지 않고 너무나 행복하다고 말합니다. 왜? 바로 매 연주마다 신기한 악기와 익숙한 멜로디에 눈을 반짝이며 박수를 쳐주는 꼬마 관객들 때문입니다.

결국 드는 생각은 우리는 다른 사람의 반응에 크게 좌우되는, 어쩔 수 없는 사회적 동물이라는 것입니다. <조커>에서 나오듯 코미디언의 가장 큰 악몽은 자기가 열심히 개그를 쳤는데 아무도 웃어주지 않는 순간이죠. 사람들은 자신이 즐거운 것을 다른 사람과 나누고 싶어 하고, 다른 사람도 그 즐거움을 똑같이 느끼는 지도 궁금해 합니다. 심지어 다른 사람이 뿜어내는 감정을 보면 자신은 아무 일을 겪지 않았는데도 그 감정에 동화되기도 하니까요.

대표적인 것이 유튜브에 흔한 'reaction video'입니다. 영화 예고편, 새로 공개된 MV, 심지어 국뽕까지 온갖 것을 보고 놀라고 소리 지르고 눈물 흘리는 사람들의 반응을 모아 놓은 영상입니다. 재밌는 것은 댓글창을 살펴보면 이 영상을 찾은 사람들은 보통 그 소재들을 이미 본 사람들이라는 점입니다. 그 소재 자체가 궁금한 것이 아니라, 자신이 그랬듯 그것에 반응하고 놀라는 다른 사람들을 보고 같은 감흥을 공유하는 쾌감을 느끼기 위해 reaction video를 찾는 것이죠.

공부가 재미없고 게임이 재미있는 이유도 반응에 있습니다. 공부는 내가 아무리 열심히 해도 시험 전까지는 티가 안나니까요. 내 지식이 늘고 내가 성장했다는게 잘 확인이 안됩니다. 심지어 곧바로 성적이 오른다는 보장도 없습니다.

그런데 게임은 내가 한 행동의 '반응', 혹은 '보상'이 곧바로 들어옵니다. 적절하게 촘촘히 배치된 보상체계가 나를 계속 다음 스텝으로 이끕니다. 내가 시원찮은 농담을 던져도 잘 웃어주는 관객을 만나는 것과 비슷합니다. 매료되지 않기가 어렵죠!

좋은 반응, 리액션은 사람의 마음을 열고 행동을 이끕니다. 직원이 더 열심히 일하게 만들고 수강생이 한계를 넘어 바벨을 더 들 수 있게 합니다. 같은 극장에서 같은 곡을 20년째 연주해도 행복하게 치도록 만듭니다. 당연하게 여겨 왔지만 생각보다 더 강력하게 인간 근간을 지배하는 원리 같습니다. abci

8 months ago (edited) | [YT] | 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