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통은 비상계엄을 통해 대한민국 우익의 심장부에 들어왔다. 국민 개개인의 심장은 왼쪽에서 뛰지만, 대한민국의 심장은 오른쪽에서 뛴다. 왜냐? 대한민국이라는 ‘국가’를 걱정하는 것은 오로지 우익이기 때문이다.
586과 40대는 국가의 맛을 모른다. 그 전 세대는 국가의 맛을 봤다. 국가가 없다가 생겨나는 것을 봤으며, 국가가 성장하면서 자신이 성장하고, 가족이 성장하는 것을 봤다. 그러나 586과 40대는 생애 내내 국가를 흔들면서 대한민국을 저주하는 반국가세력을 지지해왔다. 이러한 이른바 ‘민주화’ 세대는 정작 성장의 혜택을 누리면서, 그 성장의 근원인 ‘국가’에 대한 근본 개념조차 없으며, 있더라도 대한민국을 ‘잘못 생겨난 나라’, ‘생겨나서는 안될 나라’라고 여겨왔다. 586과 40대의 정신에는 ‘국가’란 없으며, 그 대신 ‘사회’가 들어섰다. 사회는 인간관계에 불과하다. 저 세대가 거짓 선동에 취약하고, 국가를 사회에 부속한 ‘복지 단체’ 정도로 여기는 것도 저 반체제세대의 정신적 무국가주의, 무정부주의 때문이다. 586과 40대는 국민 개개인을 통합하고 조율하는 질서의 근원으로서의 국가, 사회적 관계망을 제거할지라도, 개인을 위해 존재하되 개인이 그것을 위해서는 기꺼이 희생하지 않을 수 없는 역설적인 실체인 국가에 대한 감도 갖지 못한 세대다.
윤통은 위대하다. 왜냐? 대한민국의 20대와 30대를 정치의 최전선으로 데려오고 있기 때문이다. 이 젊은 세대는 윤통의 계엄과 탄핵을 통해 ‘국가’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스스로의 눈으로 지켜보고 있다. 행정부 수장이 국회로부터 어떤 공격을 받고 있으며, 사정기관들과 사법부 카르텔에 윤통이 어떻게 맞서고 있으며, 정당의 부패와 무능력, 군과 경찰 조직의 쿠데타, 언론의 무자비한 선동과 관료들과 조직의 배신으로 윤통이 얼마나 벼랑끝에 몰려있는지, 그리고 무엇보다 국가의 운명을 결정할 친중에 대항한 친미의 투쟁을, 이 젊은 20대와 30대는 마음을 졸이며 한남동을, 윤통을, ‘국가’를 지켜보고 있다.
586과 40대는 기껏 ‘민주당’의 눈으로 세상을 본 세대다. 그러나 윤통의 계엄과 탄핵을 통해 20, 30대는 국가적인 수준에서, 국제적인 수준에서 세계를 볼 수 있는 역사적 기회를 얻었다.
이번 윤통의 계엄과 탄핵을 통해 586과 40대의 반체제세대와 20, 30대는 완전히 결별할 수 있게되었다. 저 세대는 자기보다 가난한 자식 세대를 만든 첫 세대이고, 그나마 민주화에서조차도 문재인의 종북과 이재명의 입법독재를 옹호하는 수준의 세대이다. 그러나 이제 그 세대는 지나갔다.
도래할 세대는 ‘윤통 세대’, 아니 ’대한민국 세대‘로서, 통일 첫 세대이자, 해양세대의 첫 세대가 될 것이다. 한남동에서 눈바람과 추위를 이기며 나라를 걱정하는 청춘들이여, 그대들이 잃은 것은 잠과 낭랑한 목소리, 약간의 건강이지만 얻을 것은 대한민국의 미래다. 그대들은 이미 대한민국의 심장부에 들어섰다. 이제는 대한민국과 함께 약동하는 일만 남아있다.
프라리스 월드
윤통은 비상계엄을 통해 대한민국 우익의 심장부에 들어왔다. 국민 개개인의 심장은 왼쪽에서 뛰지만, 대한민국의 심장은 오른쪽에서 뛴다. 왜냐? 대한민국이라는 ‘국가’를 걱정하는 것은 오로지 우익이기 때문이다.
586과 40대는 국가의 맛을 모른다. 그 전 세대는 국가의 맛을 봤다. 국가가 없다가 생겨나는 것을 봤으며, 국가가 성장하면서 자신이 성장하고, 가족이 성장하는 것을 봤다. 그러나 586과 40대는 생애 내내 국가를 흔들면서 대한민국을 저주하는 반국가세력을 지지해왔다. 이러한 이른바 ‘민주화’ 세대는 정작 성장의 혜택을 누리면서, 그 성장의 근원인 ‘국가’에 대한 근본 개념조차 없으며, 있더라도 대한민국을 ‘잘못 생겨난 나라’, ‘생겨나서는 안될 나라’라고 여겨왔다. 586과 40대의 정신에는 ‘국가’란 없으며, 그 대신 ‘사회’가 들어섰다. 사회는 인간관계에 불과하다. 저 세대가 거짓 선동에 취약하고, 국가를 사회에 부속한 ‘복지 단체’ 정도로 여기는 것도 저 반체제세대의 정신적 무국가주의, 무정부주의 때문이다. 586과 40대는 국민 개개인을 통합하고 조율하는 질서의 근원으로서의 국가, 사회적 관계망을 제거할지라도, 개인을 위해 존재하되 개인이 그것을 위해서는 기꺼이 희생하지 않을 수 없는 역설적인 실체인 국가에 대한 감도 갖지 못한 세대다.
윤통은 위대하다. 왜냐? 대한민국의 20대와 30대를 정치의 최전선으로 데려오고 있기 때문이다. 이 젊은 세대는 윤통의 계엄과 탄핵을 통해 ‘국가’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스스로의 눈으로 지켜보고 있다. 행정부 수장이 국회로부터 어떤 공격을 받고 있으며, 사정기관들과 사법부 카르텔에 윤통이 어떻게 맞서고 있으며, 정당의 부패와 무능력, 군과 경찰 조직의 쿠데타, 언론의 무자비한 선동과 관료들과 조직의 배신으로 윤통이 얼마나 벼랑끝에 몰려있는지, 그리고 무엇보다 국가의 운명을 결정할 친중에 대항한 친미의 투쟁을, 이 젊은 20대와 30대는 마음을 졸이며 한남동을, 윤통을, ‘국가’를 지켜보고 있다.
586과 40대는 기껏 ‘민주당’의 눈으로 세상을 본 세대다. 그러나 윤통의 계엄과 탄핵을 통해 20, 30대는 국가적인 수준에서, 국제적인 수준에서 세계를 볼 수 있는 역사적 기회를 얻었다.
이번 윤통의 계엄과 탄핵을 통해 586과 40대의 반체제세대와 20, 30대는 완전히 결별할 수 있게되었다. 저 세대는 자기보다 가난한 자식 세대를 만든 첫 세대이고, 그나마 민주화에서조차도 문재인의 종북과 이재명의 입법독재를 옹호하는 수준의 세대이다. 그러나 이제 그 세대는 지나갔다.
도래할 세대는 ‘윤통 세대’, 아니 ’대한민국 세대‘로서, 통일 첫 세대이자, 해양세대의 첫 세대가 될 것이다. 한남동에서 눈바람과 추위를 이기며 나라를 걱정하는 청춘들이여, 그대들이 잃은 것은 잠과 낭랑한 목소리, 약간의 건강이지만 얻을 것은 대한민국의 미래다. 그대들은 이미 대한민국의 심장부에 들어섰다. 이제는 대한민국과 함께 약동하는 일만 남아있다.
11 months ago (edited) | [YT] |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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