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하 5도, 숨을 내쉴 때마다 하얀 입김이 흩어지던 오늘. 비상계엄이 내란으로 뒤바뀌던 그날로부터 정확히 1년이 되는 날, 우리는 다시 그 자리, 대한민국 국회 앞으로 향했습니다. 차가운 바람도 막지 못할 만큼 많은 시민들이 함께했습니다.
1년 전, 밤 10시 28분. 어처구니없는 비상계엄 선포 소식이 전해지던 순간, 저는 상가집에서 조문 중이었습니다. 믿을 수 없는 현실에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그저 본능처럼 국회로 달려갔습니다. 이재명 대표님 또한 이재명TV 라이브를 통해 시민들에게 국회로 모여달라 호소하며 향하셨고, 김혜경 여사님은 울음을 삼키며 운전대를 잡으셨습니다. 국회는 이미 봉쇄되어 있었고, 대표님은 결국 담장을 넘어 사무실로 들어가셨습니다.
저는 서강대교 인근에서 택시에서 내리자마자 숨이 턱 막히도록 국회 정문을 향해 뛰었습니다. 막아서는 경찰들 사이로 몸을 던져 “문을 열라!”고 외치며 밀고 밀리기를 반복했습니다. 작은 틈이 보이자 그대로 안으로 뛰어들어 울음을 삼키며 본청으로 달려갔습니다.
잠시 뒤, 국회 상공엔 여러 대의 헬기가 맴돌았고, 그제야 마음속 깊은 공포가 올라왔습니다. 시골에 계신 여든이 넘은 어머니 그리고 상가집에 있을거라 생각할 아내와 딸들… 작별인사조차 못 한 채 여기서 끝날 수도 있겠다는 생각에 눈물이 왈칵 쏟아졌습니다.
하지만 두려움보다 앞선 건 그래도 버티자. 끝까지 막아내자. 그 마음 하나였습니다. 곧이어 완전무장한 계엄군이 국회 정문으로 몰려왔습니다. 저는 시민들과 국회 직원들과 함께 “막아!”라 외치며 사방을 뛰어다녔습니다. 계엄해제를 위한 단 1분, 1초를 벌기 위해서였습니다.
생각과 달리, 707특임대를 비롯한 계엄군은 상대적으로 조심스럽게 움직였습니다. 저는 그들에게 후회할 일을 하지 말라고, 진짜 책임져야 할 사람은 따로 있다고 말하며 필사적으로 설득했습니다. 그러나 국회 정문이 뚫리지 않자 한 부대가 국회 우측 창문을 깨고 들어오려 한다는 소식을 듣고 달려갔습니다. 이미 창문이 깨지고 군인들이 진입을 시도하는 상황이었습니다.
순간, 모든 감정이 폭발했습니다. 야! “이게 뭐하는거야!” “윤석열하고 평생 살래!” "니가 깼잖아 니가 깼는데 그게 닫히냐?"찢어질 듯한 목소리로 소리쳤습니다. 저는 분명히 보았습니다. 국회의원 체포를 위해 망치와 공업용 케이블타이를 준비해온 모습을… 그 장면은 아직도 눈앞에 생생합니다.
그리고 드디어, 새벽 1시 2분. 비상계엄 해제 요구안이 국회 본회의에서 가결되었습니다. 계엄군의 동작은 멈추었고, 그제야 겨우 숨을 돌릴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모든 것이 공식적으로 끝난 것은 새벽 4시 27분, 윤석열비상계엄 해제 담화가 발표되고 나서였습니다.
1년 뒤 오늘, 그 밤을 함께 버텨낸 사람들이 다시 한자리에 모였습니다.추운 겨울바람이 부는 국회 앞 광장엔 오히려 따뜻한 빛과 연대의 온기가 가득했습니다. 그날의 공포를 이겨낸 것은 거창한 힘이 아니라, 우리들의 열정과 용기, 그리고 서로를 향한 믿음이었습니다.
나는 기억합니다. 2024년 12월 3일, 그 두려움과 뜨거웠던 밤을 그리고 오늘, 우리는 그 기억 위에 빛의 혁명을 완성할 새로운 희망을 다시 세우고 있습니다. 2024년 12원 3일을 기억하며...정치타파 파이팅!
명쇼츠
영하 5도, 숨을 내쉴 때마다 하얀 입김이 흩어지던 오늘.
비상계엄이 내란으로 뒤바뀌던 그날로부터 정확히 1년이 되는 날, 우리는 다시 그 자리, 대한민국 국회 앞으로 향했습니다. 차가운 바람도 막지 못할 만큼 많은 시민들이 함께했습니다.
1년 전, 밤 10시 28분.
어처구니없는 비상계엄 선포 소식이 전해지던 순간,
저는 상가집에서 조문 중이었습니다.
믿을 수 없는 현실에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그저 본능처럼 국회로 달려갔습니다.
이재명 대표님 또한 이재명TV 라이브를 통해
시민들에게 국회로 모여달라 호소하며 향하셨고,
김혜경 여사님은 울음을 삼키며 운전대를 잡으셨습니다.
국회는 이미 봉쇄되어 있었고,
대표님은 결국 담장을 넘어 사무실로 들어가셨습니다.
저는 서강대교 인근에서 택시에서 내리자마자
숨이 턱 막히도록 국회 정문을 향해 뛰었습니다.
막아서는 경찰들 사이로 몸을 던져
“문을 열라!”고 외치며 밀고 밀리기를 반복했습니다.
작은 틈이 보이자 그대로 안으로 뛰어들어
울음을 삼키며 본청으로 달려갔습니다.
잠시 뒤, 국회 상공엔 여러 대의 헬기가 맴돌았고,
그제야 마음속 깊은 공포가 올라왔습니다.
시골에 계신 여든이 넘은 어머니
그리고 상가집에 있을거라 생각할 아내와 딸들…
작별인사조차 못 한 채 여기서 끝날 수도 있겠다는 생각에 눈물이 왈칵 쏟아졌습니다.
하지만 두려움보다 앞선 건 그래도 버티자. 끝까지 막아내자. 그 마음 하나였습니다.
곧이어 완전무장한 계엄군이 국회 정문으로 몰려왔습니다. 저는 시민들과 국회 직원들과 함께
“막아!”라 외치며 사방을 뛰어다녔습니다.
계엄해제를 위한 단 1분, 1초를 벌기 위해서였습니다.
생각과 달리, 707특임대를 비롯한 계엄군은
상대적으로 조심스럽게 움직였습니다.
저는 그들에게 후회할 일을 하지 말라고,
진짜 책임져야 할 사람은 따로 있다고 말하며
필사적으로 설득했습니다. 그러나 국회 정문이 뚫리지 않자 한 부대가 국회 우측 창문을 깨고 들어오려 한다는 소식을 듣고 달려갔습니다. 이미 창문이 깨지고 군인들이 진입을 시도하는 상황이었습니다.
순간, 모든 감정이 폭발했습니다.
야! “이게 뭐하는거야!”
“윤석열하고 평생 살래!” "니가 깼잖아 니가 깼는데 그게 닫히냐?"찢어질 듯한 목소리로 소리쳤습니다. 저는 분명히 보았습니다.
국회의원 체포를 위해 망치와 공업용 케이블타이를 준비해온 모습을… 그 장면은 아직도 눈앞에 생생합니다.
그리고 드디어, 새벽 1시 2분. 비상계엄 해제 요구안이 국회 본회의에서 가결되었습니다.
계엄군의 동작은 멈추었고, 그제야 겨우 숨을 돌릴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모든 것이 공식적으로 끝난 것은
새벽 4시 27분, 윤석열비상계엄 해제 담화가 발표되고 나서였습니다.
1년 뒤 오늘,
그 밤을 함께 버텨낸 사람들이 다시 한자리에 모였습니다.추운 겨울바람이 부는 국회 앞 광장엔
오히려 따뜻한 빛과 연대의 온기가 가득했습니다.
그날의 공포를 이겨낸 것은 거창한 힘이 아니라,
우리들의 열정과 용기, 그리고 서로를 향한 믿음이었습니다.
나는 기억합니다.
2024년 12월 3일, 그 두려움과 뜨거웠던 밤을
그리고 오늘, 우리는 그 기억 위에
빛의 혁명을 완성할 새로운 희망을 다시 세우고 있습니다.
2024년 12원 3일을 기억하며...정치타파 파이팅!
3 days ago | [YT] | 1,041